3. 주일날 스님부터 목사님에게 우울증 여쭤보기

주일이다. 아침부터 스님 동영상을 본다

by 아침뱃살

오늘은 주일이다. 아침부터 유튜브로 법륜스님 동영상을 찾아본다. 어제까지 기독쇼 서적을 보면서 기도했는데, 웬 불교 영상을 보고 있냐고? 그것도 주일 아침에 말이다. 며칠간 유튜브에 '우울증 극복'으로 검색했더니 관련 영상을 추천해준다. 지독한 우울증 늪에서만 구해준다면 기독교든 불교든 유대교든 어떠랴. 유튜브가 추천한 건 다 봤다. 불치병과 장애를 극복한 영상까지 추천해 준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이란 참으로 신묘하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유튜브님이시다. 힘든 상황에서 극복한 수 많은 사람들 스토리를 들으며 마음에 깃털 같은 위안을 얻는다.


불교 영상을 보니 '욕심을 버려라'로 귀결된다. 그래 맞다. 기독교의 '내려놓음'과 같은 맥락인 듯하다. 욕심을 내려놔야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그렇다. '지나친 욕심'이 나의 우울증의 원인이다. '내가 뜻대로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괴로운 거다'


유튜브 동영상에서 스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기억난다. 재치있는 입담으로 지혜로운 상담을 해주신다.


하루는 어머니 한분이 와서 하소연 한다. "우리 애가 공부를 못해서 속상해요" 스님이 묻는다. "얼마나 못하나요?" 어머니가 울상을 하며 "1등을 한 번도 하지 못해요. 맨날 3등만 해요. 1등 한번만 하면 소원이 없겠어요!" 말한다.


그 다음 또 다른 어머니가 와서 상담을 한다. "우리 애가 공부를 안해요" 스님께서 묻는다. "얼마나 못하는 데요?" 어머니가 한심한 표정을 지으며 "꼴찌에요. 꼴찌! 방금 상담한 어머니 애처럼 10등 안에만 해도 소원이 없겠어요"


그 다음 또 다른 어머니는 "우리 애는 학교를 가지 않아요. 방금 상담한 어머니 애처럼 학교만 갔으면 소원이 없겠어요"며 걱정을 털어놓는다.


그 다음 어머니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우리 애는 교도소에 있어요. 학교 안가도 좋으니 바르게만 살았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말한다.


그 다음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린다. "우라 애 살아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얘기를 듣고 중국 고어가 생각났다. 바로 "比上不足, 比下有余(비상부족, 비하유족)"이다. '자기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면 부족하지만,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면 항상 남는다'라는 뜻이다. 유튜브는 이런 심오한 논리를 알고 있었나보다. 그러니 알고리즘으로 불치병같은 극복기 영상을 추천해줬겠지. '주위를 둘러봐. 너보다 힘든 사람이 더 많다고!'라고 얘기해 준거겠지.


그래도 우울한 건 어쩌랴. 방관자 입장에서 보면 내가 겪고 있는 일이 힘든 일이 전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힘듦의 중량은 주관적이다. 세상의 저울은 물건의 중량을 객관적인 수치로 잴 수 있겠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고통은 주관적이다. 고통의 중량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 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저울의 기준은 다르다. 사소한 고통도 자신에게는 한없이 무거울 수 있다. 나는 지금 한없이 고통스럽다.


아! 맞다. 오늘은 주일이지! 스님 말씀에 너무 빠져있었다. 스님에게 감사했다. 욕심을 버리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주일인 만큼 교회 설교말씀도 들어본다.


로마서 5장 말씀을 읽었다.


'3. 이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고난 중에서도 기뻐하는 것은 고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된 인격을, 연단된 인격은 희망을 갖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영어로 보면 조금 더 와 닿는다.


'3. Not only so, bu we(a) also glory in our sufferings, because we know that suffering produces perseverance; 4. perseverance, character; and character, hope.'


나의 우울증이라는 고통(sufferings)을 영광스럽게, 기쁘게 생각해야 한다. 그 이유는 고통은 인내심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우울증의 고통을 참아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인내를 하면 캐릭터(Caracter)가 바뀐다. 나의 기질, 특성 모두 바뀌는 것이다. 그 전의 내가 아닌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거짓말하던 나, 교만하던 나'가 아니라 고통을 통해 '새로운 나'가 태어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럼이 없는 내가 될때, 비로소 희망(Hope)을 볼 수 있다. 우울증의 터널 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해야하는 일이 정리됐다.

첫째, 고통을 참아야 한다. 둘째, 과거의 나를 반성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자. 그때 나는 우울증 터널 끝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설교 말씀 주제는 '기도는 삶의 무기'였다. 나에게 주신 말씀이다. 나 혼자서 참아내고 반성할 수 없다. 견뎌내는 것은 혼자의 힘으로 쉽지 않다. 옆에서 누군가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 반성 또한 그렇다. 누가 누구를 용서한단 말인가. 내가 나를 용서하면 새로운 사람이 될까? 결국은 '기도'이다. 하나님과 대화를 해야한다. 소통을 해야한다. 예수님만이 나의 죄를 용서해줄 수 있다.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주실 수 있다.


어제는 '하나님 도와주세요'를 주문처럼 외우면서 기도했다. 오늘부터 기도가 조금 바뀌었다. '하나님. 저에게 찾아와 주세요. 하나님 안에 거하기 원합니다. 이 고통을 참아낼 힘을 주세요. 그리고 과거에 교만했던, 거짓말 했던 말과 행동을 용서해주세요.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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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로부터 입수된 Patricia Alexandre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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