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어른?
내가 속해 있는 협회 중 하나인 (사)출산육아교육협회에서 체제가 개편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직책과 업무를 부여받았다.
내가 수장으로 있는 부서는 '액티브 시니어 교육위원'이다.
강사인 내가 나이 들어감에 따라 내가 만나는 연령층도 변화가 따를 수밖에 없고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린이집 아이들부터 초중고생, 청년들, 학부모, 조부모들까지 내가 만나는 대상은 다양하지만 궁극적으로 앞으로 내가 주요 대상으로 삼아야 할 연령대는 시니어이다.
그래서 액티브 시니어를 교육하는 강사들을 교육하는 것이 앞으로 내가 할 일이다.
대상이 시니어이다 보니 그들과의 첫 만남을 부드럽게 풀어 줄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 나 역시 공부를 하고 싶었다.
굳이 공부까지 해야 할까 싶지만 누군가를 교육하기 위해서는 나 역시 계속 업그레이드하며 배워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래서 강의가 없는 겨울을 활용해 다음 해에 강의를 하는 데 필요한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기도 하고, 소장가치가 있는 책들은 구매해서 쌓아놓고 읽기도 한다.
또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다각도로 교육을 골라서 듣기도 한다.
내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교육을 하는 강사로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춰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수강생들의 귀한 발걸음과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 역시 끊임없이 투자를 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마침 노인복지회관에서 내가 원하는 강좌를 오픈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오픈런으로 수강신청을 하러 갔다.
강좌를 들으려면 먼저 노인 복지회관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회원의 자격은 만 60세 이상부터 등록이 가능하다는데 어쩌다 보니 내가 자격을 충족할 나이가 되었다.
막상 가보니 그곳에 등록된 회원들 중에서 나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의 나이이다.
어색한 모습으로 쭈뼛쭈뼛 사무실에 들어가 등록을 하려는데 담당자가 대뜸 "어르신 뭘 도와 드릴까요?" 라며 묻는다.
나는 내 뒤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뒤를 돌아봤는데 어르신은 나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생전 처음 듣는 용어에 낯간지러운 듯 웃으며 "어르신이라는 말이 참 낯서네요"라고 했더니
"이곳에서는 무조건 그렇게 불러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라고 싹싹하게 대답한다.
그래, 그렇겠지. 이곳에 출입하는 사람들이 모두 노인들이니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날 보고 어르신이라니 아직도 마음은 이팔청춘인데 하하하 헛웃음을 짓는다.
아마도 이곳에 온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어르신이라고 불려야 할 나이라는 게 믿기지도 않고 귀에 익지도 않고 도무지 어색하다.
생각해 보면 내가 결혼이 늦었고, 우리 아이들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이미 손주를 본 친구들도 많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어르신이 아니라 할머니라고 해도 반박불가의 나이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어르신이라니 오히려 감사해야 할 노릇이다.
낯설고 오글거리지만 어쩌겠는가 앞으로 강좌를 듣는 동안에는 숱하게 들어야 할 호칭인데 인정하고 받아들여야지.
'나는 어르신이다, 나는 어르신이다.'
그런데 막상 어르신이라는 말을 듣고 보니 단어가 주는 무게감에 생각이 미쳤다.
최근 걸출한 두 가수를 통해 노인과 어른의 차이로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었기에 나 역시 생각을 해본 바 있었지만 막상 내가 어르신이라는 존칭을 듣고 보니 더욱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전적인 의미로 노인은 나이를 많이 먹어 늙은 사람이고 어르신은 나이가 많은 사람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높여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둘 다 고연령자를 지칭하는 용어이지만 맥락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노인과 어르신의 차이점에 대해 생각해 봤다.
노인은 살만큼 살아 봐서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이에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배울 필요성을 못 느끼고 이만하면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르신은 세상에는 아직도 내가 모르는 것이 많고 날마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이 넘쳐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알고 싶은 호기심과 열정으로 가득하다.
비록 예전만큼의 기억력은 아니지만 살아 있는 동안 꾸준히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어르신인 것 같다.
또 노인은 나이 먹었기 때문에 대접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렇지 못하면 노여워하고 무례하게 군다.
반면에 배려받는 것에 대해 감사할 줄 알고 베풀 줄 아는 것이 어르신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내가 어르신이라는 말을 들을 행동을 했던가? 내가 어르신이라는 존칭을 들을 자격이 있는가?
단순히 나이 먹고 늙은 사람을 지칭하는 노인은 아니었나? 다시 한번 나를 뒤돌아보고 반성하게 된다.
앞으로는 더욱더 어르신이라는 존칭을 들을만한 행동을 해야 할 것 같고, 존경받는 어른, 본받고 싶은 반듯한 어른이 되고 싶다.
기왕 어르신이라 불린 김에 어르신이라 는 존칭에 대해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한다.
"나도 나이 먹으면 저렇게 곱게 늙고 싶어"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 참된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