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모는 맞지만 양처는 아니랍니다

절반의 성공

by olive
꿈이 꼭 직업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어릴 적 수업시간에 꿈이나 장래희망이 무엇인지 발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수업은 지금도 꾸준히 지속되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 학부모참관 수업을 갔을 때도 꿈이나 장래희망에 대해 발표를 하게 했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꿈을 갖고 도전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꿈을 이뤄가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아닌 가 싶다.

그 과정을 통해 본인의 자아실현은 물론이거니와 나라를 위해서도 바람직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그런 질문을 던짐으로써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지 않았을까?


난 어렸을 때부터 줄곧 현모양처(賢母良妻)가 꿈이자 장래희망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제외한 친구들은 대통령이나 의사, 간호사, 판검사, 선생님 등의 직업군을 얘기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나는 친구들과 결이 다른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자니 자연스럽게 현모양처의 대명사격인 신사임당이 나의 롤모델이었다.

그런데 나의 이런 마음과 부합하는 장면을 드라마를 통해서 보고 반가웠다.


'웰컴투 삼달리'라는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 용필이가 어렸을 때 "용필이는 꿈이 뭐야?"라고 묻는 엄마에게

"내 꿈은 엄마와 삼달이야"라고 말한다.

의아해하는 엄마에게 용필이는 도리어 "꿈이 꼭 직업이어야 해?" 하면서 반문한다.

어린 용필이는 "엄마와 삼달이의 꿈이 이루어지면 내 꿈도 이루어지는 것이야"라고 의젓하게 말한다.


그 대사를 들으며 작가가 마치 어린 시절 '나의 꿈은 현모양처였고 꿈이 직업일 필요는 없어'라는 내 생각을 들여다본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왜 친구들이 직업군을 나열할 때 막연하게 신사임당 같은 현모양처를 꿈꿨을까?

나는 지금도 그것이 의문이지만 짐작하는 바는 있다.


당시의 나는 위인전집을 열심히 읽고 또 읽었다.

위인전집을 읽다 보면 훌륭한 위인들의 모습을 닮고 싶고, 지혜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부모교육을 할 때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많이 읽을 수 있도록 권한다.


위인전에 나오는 위인들은 처음부터 위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의 삶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도 아니었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지만 결국에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해 내서 마침내 위인이 된다.

위인전을 봐야 하는 이유는 위인의 일대기를 통해 교과서나 전문서적에는 나오지 않는 문제 해결력을 배울 수 있다.




다시 내 얘기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그 많고 많은 위인들 중에서도 닮고 싶은 사람을 누구로 할까?

현실적인 접근을 하기 위해 범위를 좁혀서 생각을 했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글로벌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은 편협한 시각으로 접근했다.

한국사람이어야 하고 나는 여자이니까 여자 위인이어야 한다.


그런데 유관순언니처럼 올곧은 신념을 가지고 엄청나고 훌륭한 일을 할 자신은 없었다.

한껏 나약하고 평범한 내가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은 인물이라면 자식을 훌륭한 인재로 키운 신사임당이 딱이었다.

'나의 꿈은 현모양처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의 롤모델은 신사임당이다!'


또 현모양처는 나의 성향과도 맞닿아 있다.

나는 성향상 앞에 나서서 뭔가를 이끌어 나가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리더의 뒤에서 아이디어를 제공해 도움을 주고, 리더가 빛날 수 있도록 하는 참모의 역할을 잘하는 편이다.


그래서 자식들을 훌륭한 인재로 키운 신사임당을 롤모델로 꿈꾸지 않았을까?

물론 신사임당은 남편도 잘 섬기고, 자식들 양육도 잘했지만 본인 역시 시(詩), 서(書), 화(畵)에 능했다.


신사임당이야말로 난다 긴다 하는 위인들을 제치고 우리나라 화폐 중 가장 고액권을 장식한 인물이 아닌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닿기 어려운 어마무시한 인물을 롤모델로 삼았던 것 같다.


하지만 어린 내 눈에는 닮고 싶고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나 보다.

그래서 감히 나는 나의 롤모델로 신사임당을 점찍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그 시절에 나는 분명히 현모양처를 꿈꾸는 소녀였다.


꿈은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나의 꿈은 이루어졌을까?

좀 더 정확히 얘기해서 나는 되고자 하는 현모양처가 되었을까?


내가 어렸을 때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처럼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대통령이나 판검사 되는 것보다 쉬울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원하는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노력하고 안 되면 다시 도전하고 죽기 살기로 최선을 다하면 목표를 이룰 수 있다.


하지만 현모양처는 나 혼자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아내와 남편, 엄마와 아이들의 삼박자가 딱 맞아떨어져야 가능하다.

엄마는 아이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를 해도 아이들이 노력을 하지 않거나 제 몫을 해내지 않으면 현모가 될 수 없다.


또 아내는 죽어라 최선을 다해 내조를 해도 남편이 능력이 안되거나 남편이 바라는 양처의 기준이 높아 인정을 안 하면 양처가 될 수 없다.

내가 노력한 만큼 남편이나 자녀가 부응을 해야 되는 것이 현모이고 양처인 것 같다.




어릴 적 내 꿈이 현모양처였노라 얘기했더니 남편은 단호한 어조로 양처(良妻)는 아닌 것 같지만 현모(賢母)는 분명한 것 같단다.

'내 딴에는 하노라 했지만 상대방이 양처가 아니라는데야 우겨서 될 일도 아니고,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은가.

오케이! 부족함 인정, 깔끔하게 양처(良妻) 포기'


그렇다면 남편도 인정한 현모(賢母)는?

오매불망 자식에게 목매고, 자식 입에 들어가는 밥 숟가락을 보면 내 배가 부르고, 모든 안테나의 주파수가 자식에게 맞춰져 있고, 자식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5분 대기조를 자처하니 때로는 과잉보호를 한다며 그 반의 반만큼만 나에게 하라고 남편에게 통박도 많이 듣는다.


그런데 세상의 어느 엄마가 자식에게 나만큼 하지 않으랴 싶다가도 '그래 나는 어미로써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 하는 자부심은 있다.

지금은 성인이 된 아이들과 적절한 거리를 두면서도 아이들이 원할 때는 기꺼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선다.


그런 내 노력을 알아서일까.

아이들은 어엿한 직업을 찾아서 독립을 했고, 시키지 않아도 두 녀석은 퇴근길에 번갈아 가며 매일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고, 소소한 하루일과에 대해 얘기를 한다.


때론 몇 초에서 길어야 10분이지만 그 시간은 독립해서 떨어져 있는 아이들과 나 사이를 연결해 주는 끈인 것 같아서 즐겁고 기다려진다.

지인들은 딸도 아닌 아들들이 매일 안부전화 하는 것을 지켜보며 내심 부러워한다.

물론 지금은 여친이 없어서 가능한 일이다.

만약 여친이 생기면 그때는 이런 소소한 즐거움도 없지 않을까 싶고, 당연한 일이다.


오랜 내 꿈이었던 현모양처,

이제와 결산을 해보니 아쉽지만 반은 성공했고, 반은 실패한 것 같다.

그러나 절반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했다고 실망을 하기보다는 "둘 다 실패하지 않은 게 어디야" 하고 긍정회로를 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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