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바람이라도 그 꽃들을 밟지 말지어니

by 꿈꾸는 임

암흑 같은 세월이, 힘들고, 더디게, 흐르고 있다. (본문 380쪽)

마주하기 힘든 역사가 있다. 지나간 일이니 잊어라 말할 수 없다. 지금도 그 아픔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분들이 있으니 우리들은 그 일을 무관심하게 바라볼 수 없는 것이다. 그 분들은 평생 안고 가야하는 상처이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로 더 큰 고통을 받고 있기에 이 책을 만나면서 우리들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권비영이 이야기하는 문학은 이러한 질문이 밑바탕이 된 것이다. "상처 받은 영혼을 위로하는 작가" 권비영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래서 아프다. 상처를 애써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끄집어내서 함께 아파하고 치유를 향한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것만으로도 상처 받은 영혼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함께 아파하고 통곡하면서 한없는 슬픔에 빠져든다.

<몽화>는 일제강점기에 살아간 세 소녀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영실, 정인, 은화 세 소녀는 친구가 되기로 하고 그들만의 공간인 아지트에서 자주 어울린다. 어두운 동굴 속이지만 세상과는 차단된 별천지,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해방감을 맛보았다. 그 시절의 소녀들도 우리네 어린 시절과 다를 바 없는 꿈 많고 해맑은 모습이지만, 시절의 어두움이 그들의 꿈을 송두리째 짓밟는다. 꿈 많은 소녀의 모습과 대비되어 세 소녀의 우정맹세 장면조차 가슴 시리다. 앞으로 펼쳐질 서로의 운명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 채 사뭇 진지한 맹세의 말에 폭풍전야와 같은 느낌으로 책장을 넘긴다. 그리고 <몽화>에서는 담담하게 그들의 일상을 그려낸다. 어찌 보면 그다지 극적일 것도 없고 평범한 일상을 담담하게 풀어낸 듯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답답한 마음이 지속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아픔이기 때문이다. 시간만 흘려보내며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무능력한 것인지. 속상하고 무기력해진다. 화가 나기도 하고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온다.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일반인이고, 그들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기에, 그들의 고통이 오롯이 전해 지나보다. 측은하고 가엽고 아프다.

- 우리들 몸이 더러워진 것은 우리 뜻과는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에요.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죠. 우리는 전쟁을 원한 적도 없고 전쟁에 미친 군인들을 위무할 생각도 없었어요. 그건 미친바람이 지나간 자리일 뿐이에요. 바람은 곧 잠들 거예요. (243쪽)

그 미친바람이 오기 전 열여섯 살의 소녀들은 꿈을 꾼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서 예쁜 아기 낳고 알콩달콩 사는 현모양처가 꿈이라는 정인, 인간의 외로운 심성을 어루만질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은 은화, 그리고 약간 고집스럽지만, 바른 길이 아니라면 가지 않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은 영실, 세 소녀의 운명은 기구하게도 그들이 처한 환경과 마찬가지로 변해버리고 만다. 친일파의 딸인 정화는 그녀의 아버지 덕분에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한다. 하지만 정화는 아버지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꼭두각시 같은 삶에 염증을 느끼며, 머나먼 타지에서 은화와 영실을 계속해서 그리워한다. 하지만 그녀의 수동적인 태도는 은화와 영실에게 불어 닥치는 기구한 운명을 바꾸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화월각을 운영하는 태선어미의 양자인 은화는 기생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화월각을 탈출하게 된다. 하지만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의 장난인지, 그녀는 결국 '위안부'로 징용되었다. 그녀의 필사적인 노력에서 불구하고, 그녀는 운명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엔 역부족이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찾아 만주로 떠난 어머니의 부탁으로 이모의 집에 얹혀살게 된 영실은 일본에서 일을 도우면서 공부를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운명의 소용돌이를 피할 순 없었다. 만주로 피신한 아버지는 일본의 탄광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었으며, 아버지를 찾아 나선 어머니의 소식은 어느덧 감감무소식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순결을 앗아간 태식은 우유부단한 태도로 일관하였기에, 먼 타지에서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꿈 많고 희망에 부풀어있을 시간들을 보내는 소녀들. 어떻게 살아갈까, 앞으로의 삶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어떤 친구들을 만나게 될까. 모든 시간이 찬란하기만 할 시간. 그 아름다운 시절에 전쟁을 겪고 있다면 그것처럼 아픈 일도 없다. 더구나 그 시기가 일제강점기라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희망이 없는 암울한 시대. 하지만 아무리 전쟁속이라도, 주권이 없는 시대여도 누군가는 꿈을 꾸고, 사랑도 하고, 일상을 살아간다. 나라에 대한 걱정을 하는 건 부차적인 문제이며,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므로 일상의 삶을 살아낸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절망스럽고 처절하지만 그래도 삶은 살아내며 견뎌낸다.

<몽화>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잊지 말고 기억하며 그들과 함께 아파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 이야기와 함께 작가의 집필후기도 인상적이다. 작가는 '사라져 가는 것이 잊히는 것이라면 그들이 사라지기 전에 그들의 이야기를 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 한다. 그것이 역사의 광풍 앞에서 자신을 지켜 내기 위해 몸부림쳤던 가녀린 소녀들에 대한 예의라고.

‘일제 강점기를 견뎌 내야 했던 가녀린 소녀들과, 동시에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청년들의 이야기는 아직 현재형이다. 각기 다른 환경에 처한 세 소녀의 일그러진 일상을 통해 씨줄과 날줄로 얽히는 사람들의 애환을 통해, 존재감도 없이 사라져야 했던 소녀들의 억울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냄으로써 그 암흑의 시대를 견뎌 온 소녀들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고 싶었다. 따스한 손길을 건네고 싶었다. 곳곳에, 슬픈 눈빛으로 서 있는, 위안부였던 소녀들의 맨발에 신발을 신겨 주고 싶었다. 그래서 가슴 저 밑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통곡을 함께하고 싶었다. (집필후기 中)’고 작가는 말한다. 작가답게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했던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영화가 되었든 책이 되었든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노력들, 그리고 나의 관심 안으로 들여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이런 실천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있었던 한 일 간 위안부 협상 결과는 한숨짓게 한다. 100억 주고 끝날 일이었다면 진작에 끝났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동안 위안부 문제를 끊임없이 거론해왔던 이유가 보상금의 액수 때문은 아니지 않을까. 힘든 몸을 이끌고 수요 집회 때마다 참석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협상을 못 해서 안한 게 아니라 그렇게 협상을 하면 안 되었기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무너진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우리가 더 기억하고 노력하여 조금 더 책임의식을 가질 수 있었다면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다 지나간 일이니 그만하자고 할 수 있을까. 그만 이야기하자고 할 수 있을까. 여전히 못다 핀 꽃송이들이 저렇게 아우성치고 있는데, 그렇게 살아내고 있는데, 그만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미안한 마음뿐인 과거이지만 그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다시는 그런 참혹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느끼고 공감하고 더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시대만 옮겨왔을 뿐 우리는 살면서 정의의 문제에 늘 부딪히기 마련이다. 매 순간 어떤 태도를 취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생각하는 것,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지금 이 순간만이 내 시간이고 나의 것이다. 과거 역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 각자가 관심 안에 가지고 있을 때 우리의 문제가 되고 우리의 책임이 되는 것이다. 정치인의 일이라고 정치에만 맡겨서도 안 되는 이유인 것이다. 정말 부끄러운 역사는 잘못된 정치가 아니라 모든 것을 타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각자의 책임 부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어떤 꿈이든 꿀 수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신의를 지킬 수도 있고,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해 선택할 수도 있고, 삶의 가치에 대해 사치스러울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역사를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것은 소설 <몽화>가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서 독자들을 만나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 안에서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돌아가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