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봤지?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촬영지 여행

by 꺼벙이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이 영화를 본 사람이 1500만 명을 넘겼다고 한다.

무엇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을까?

지금은 AI시대이다. 사람들과의 소통을 어려워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과의 따듯한 정은 어디로 가고 불편함만이 있다.

AI에게 말을 거는 게 훤씬 편하고, 집에 들어서면 꼬리를 흔드는 애완견이 더 좋은 세상이다.

아, 애완견이란 표현은 적정하지 않다. 반려견이라 하여야 한다.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하고 함께 살아갈 때 힘든 삶을 견딜 수 있다.

어쩌다 사람은 사람을 밀고 동물을 반려의 자리에 앉혔을까?


이런 시대에 <왕과 사는 남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뜻한 정이 무엇이진를 보여준다.

나약하여 속절없이 당하여 낙망한 마음으로 강제로 떨어진 절망의 땅이 청령포란 유배지다.

유배지에서 삶은 고통도 잊게 하는 좌절이었다.

유배지 광천골 사람들의 순박함과 정으로 그는 웃음을 찾았고, 절망에서 당당함을 얻었다.

권력자가 준 사약이 아닌 스스로가 선택한 죽음, 나약한 임금이 아니었다.

좌절한 자를 일으킨 순박한 사람들의 정, 나약함에서 벗어나 당당한 단종의 모습에 감동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영화를 봤다.

웃다가 심각해지고, 분노하며 안타까워하면서 봤다.

스스로 선택한 죽음, 그를 죽이는 자의 고통스러움과 죽어가는 이의 회한이 가슴에 들어왔다.

포대에 쌓인 시신이 시퍼렇게 흐르는 강에 던져졌을 때 내 얼굴에 거센 비가 내렸다.

멈추지 않는 눈물은 자막이 끝날 때까지 나를 일어서지 못하게 하였다.

이 영화를 본 다른 이들도 그러했을까?

텅 빈 영화관에 직원이 들어온다. 그는 내 얼굴을 쓸겠다고 비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일어섰다.

'동강할미꽃이 피었을까?'

동강할미꽃 꽃말은 '슬픈 추억'이다.


영월 관아

엄흥도가 관아 문에 들어서고 누각 아래를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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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 마당 형틀 위에 아들이 곤장을 맞고 있다. 동헌엔 사또가 허풍을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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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흥도는 사또에게 아들을 살려달라고 빈다. 사또는 마지못해 곤장을 멈추라고 한다.

벌컥 문이 열리고 한명회가 살기 어린 눈으로 죽을 때까지 치라고 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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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념하고 돌아선 엄흥도는 무심하게 서 있다가 누각을 향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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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들을 촬영한 곳은 '도암서원'이다. 도암서원은 경북 고령군 쌍림면 고곡리에 있다.

195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면 장군은 고령과 거창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1593년 전쟁 중에 병사하셨다.

도암서원 주위엔 김면 장군을 기리는 신도비가 그분의 묘지 앞에 있다.

숙연한 곳이다. 나는 김면 장군 신도비 앞에서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드린다.


세계문화유산 '가야고분군 - 지산동고분군'에서 옛사람과 이야기하고 헤어지니 하늘엔 별이 총총거린다.

밤을 도와 경북 문경시 문경새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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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오픈세트장에서는 광천골광화문 앞 등의 장면을 촬영하였다.


아들이 관아에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은 엄흥도는 관아로 미친 듯이 뛰어간다. (뛰어가는 저잣거리)

관아 문을 지키는 포졸들과 실랑이를 하다가 그들을 밀치고 관아로 들어선다. (관아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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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골, 영월 청령포는 영월읍에 있는 게 아니다. 영월군 남면 광천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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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이 궁을 떠나는 장면, 광화문 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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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대군이 사약을 마시던 장면도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에서 촬영했다고 하는데 장소를 측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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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거룬다. 단종의 한이 서린 영월로 향한다.


단종이 머물던 집, 이 강변에 세트로 지었지만 촬영이 끝난 뒤에 곧장 철거하였다고 한다.

문 밖에 강과 거대한 암벽이 보인 영월 서강과 선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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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에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엄흥도는 한명회에게 광천골이 최적의 유배지임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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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과 청령포엔 주차할 곳이 없다. 마침 오늘이 토요일이다.

굳이 이번에 이곳에 가지 않아도 된다. 나는 청령포와 장릉을 오래전부터 여러 번을 봐왔다.

이번 여행에서 갈 수 있는 마지막인 곳을 향하여 간다. 30여 분 걸린다.


노루골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노루골은 가상의 마을이 아니다.

장릉에서 한 시간쯤 시루봉을 지나면 노루봉이 나온다. 노루봉 아래가 노루골이다.


노루골 세트장은 2005년 개봉한 영화 <웰컴투동막골>을 촬영한 곳,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율치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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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봉은 영월군 북면 마차리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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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영화를 촬영한 곳을 다녔지만 강원도 고성 화암사는 가질 못하였다.

가마를 타고 억새밭을 지나는 장면, 배경에 멋진 산이 보인다. 그 산은 설악산이다.

영화를 볼 때는 바로 설악산임을 알아채지 못하였다.


이렇게 여행을 하면서 단종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단종이 수양에게 밀리지 않고 제대로 왕노릇을 하였다면 성군이 되었을까?

역사엔 가정이 성립할 수 없다.

세조도 나름 성과 있는 업적이 있다고 하지만 그걸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어린 조카를 죽이고 찬란한 왕위에 앉아 업보로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낸 자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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