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지 마세요, 뭘?
방초녹음, 오월의 여행은 오감이 즐겁다.
김천 청암사는 직지사만큼이나 유명한 곳이지만 접근성이 좋은 곳은 아니었기에 나는 아직 그곳에 가지 못하였다. 이번 오월에 청암사를 내 여행 계획에 넣고 실행을 하였다. 김해서 곧장 청암사로 간 것은 아니었다. 원주와 충주를 여행하고 김해로 귀가하는 길에 들렀다. 청암사를 가는 날은 모처럼 쾌청하였다. 아침 일찍 방초정(보물)이란 멋진 정자와 작은 연못을 봤다. 또 공원같이 아름다운 전통사찰 봉곡사에서 늙은 비구니와 옛 이야기도 나눈 터라 기분이 좋았다. 이런 기분이 청암사 가는 길을 가볍게 하였다.
일요일이라 관광객이 제법 많았다. 좁은 산길을 따라 청암사 사천왕문 앞까지 차로 갔다. 규모가 있는 절은 일주문이 먼저 반기지만 청암사는 사천왕문이 반긴다. 사천왕상은 없고 그림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불법을 지키는 역할은 제대로 하는 건 마찬가지다.
오월의 싱그러움이 대웅전으로 나를 이끌었다. 대웅전은 재를 올리고 있었다. 나는 주위를 돌았다. 경내가 단아하고 정결한 것은 비구니사찰답다. 여성과 남성이 가진 성정은 다를 수밖에 없고 우린 이것을 인정할 때 남성은 여성을, 여성은 남성을 존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대웅전 벽화를 보고 있었다. 내 어깨엔 카메라가 걸려 있었지만 손에 잡진 않았다.
종무소, 종무소 앞에서 중년부부와 등 값을 흥정하는 승려, 젊어 보인다. 그 젊은 비구니는 나를 향해 한 마디 한다.
“법당 안에서 사진을 찍지 마세요.”
가끔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았지만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대웅전 중문에서 안을 보았다. 재가 끝났는지 법당을 정리하는 승려들로 붐볐다.
“법당 안을 찍으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찍지 마세요.”
40대로 보이는 비구니는 나를 걱정하여서 한 말인지, 까닭이 있어 법당 안을 찍으면 안 된다는 경고를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순간 나는 슬펐다. 그리고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네 것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닌 부처의 것인데 찍지 말라고 하니 찍지 않을 것입니다. 허나 찍는다고 불상이고 법당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하는 말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눈을 떴다. 내게 말을 한 비구니를 봤다. 그는 고개를 숙였지만 그 얼굴을 읽을 수 없었다. 부끄러움일까, 아님 기분이 나빠 분노한 것일까, 나는 알 수 없었지만, 나도 그도 오늘 말로 악업을 쌓았다는 건 분명하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나를 지배하였다.
몇 년 전에 대전 계룡산 정상에서 만난 나이든 비구니가 있었다. 그 비구니는 정해놓고 머무는 절이 없다고 하였다. 나는 말했다.
“이 절이며 저 절이며 다니면서 머물 수 있지 않습니까?”
“에고, 이 절에 가도 저 절에 가도 문전박대합니다. 네 것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닌 부처님 것인데 나눌 줄을 모르는 게 요즘 우리나라 절 인심입니다.”
예전 만났던 나이든 비구니가 순간 내게 빙의하였던 것 같았다. 연이은 젊은 비구니 말은 법당 안에 들어가고픈 내 마음을 앗아갔다.
청암사는 산지사찰로 지형에 따라 전각을 세웠다. 대웅전 계곡 건너편에 극락전이 있다. 극락전 앞 텃밭은 정원과 같이 정갈하고 예뻤다. 아쉬운 것은 극락전은 ‘외인출입금지’다. 내 입에 빈정거림이 나왔다. 오늘 청암사와는 인연이 아닌 것 같았다. 이런 마음을 어디서 위로 받을까?
무흘계곡을 따라서 수도산으로 갔다. 여유가 있다면 사인암, 만월담, 용추폭포 들을 보면 좋겠다. 다음에 인연이 닿는다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멎은 곳은 수도암이었다. 규모는 청암사와 비슷하나 산내암자다. 수도산 정상 가까운 곳에 있어 산경이 시원하다. 멀리 보이는 가야산 우두봉이 친구하자고 하겠다.
청암사와 수도암은 묶어서 봐야 한다. 보물 석 점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굳이 문화유산을 보지 않아도 ‘산멍때리기’ 매우 좋은 곳이다. 조용하다는 건 마음에서 인식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곳은 적막, 원적한 곳이다. 경내를 오가는 승려 모습도 보이질 않는다. 설령 오가는 승려가 있다고 하여도 이 적막을 깰 수는 없다. 내 숨소리조차 바람이 앗아간 고요함이다.
대적광전 앞 삼층석탑과 약사전 앞 삼층석탑은 형제로 수도암 동서삼층석탑(보물)이라 부른다. 동탑 1층 몸돌에 석실(감실)을 파고 불상을 양각한 게 특이하였고, 통일신라 중기에 만든 것으로 여긴다. 안정감과 균형미 있는 쌍탑이 경내 분위기를 띄운다.
대적광적 안에 봉안한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은 웃음이, 미소가 없다. 굳게 다문 입, 감은 눈은 내게 ‘너도 입 다물고 살라’고 가르치는 것 같다. 괜히 마음이 찔린다.
약사전 안에 모신 석조보살좌상(보물)도 웃음이 없다. 나는 아픈 척을 해야겠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면 ‘부처가 되어 그것도 모르냐’며 타박하면 약사불은 청암사로 내려가실 것 같다. 지금 나는 현실 이익을 구하는 게 낫겠다.
“무릎이 심히 아픕니다.”
약사불이 한 말씀 하신다.
“무릎 아픈 건 정형외과에 가고, 오늘 나쁜 기억을 잊어야 내일 이곳에 다시 올 수 있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수도암을 나왔다. 무흘계곡에 하루 시름을 흘려보냈다. 차가 청암사 입구를 지난다.
“처사님, 법당 안을 찍으시면 곤란합니다. 삼가 해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나는 싱긋이 웃으며 젊은 비구니의 성불을 기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