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비구니의 향수

수행도 삶이다

by 꺼벙이

향기로운 오월에 나는 봉곡사와 첫 인연을 맺었다. 절 주위 경치가 사람의 눈을 유혹할 만큼 빼어난 곳은 아니다. 심산유곡을 의지하지 않으나 따사로운 햇살이 조용하게 노니는 밝은 곳이다. 하얀 불두화와 키재기하는 단출한 일주문을 지나면 곧장 대웅전이다. 아담한 세 칸 대웅전 뜰엔 지난 세월의 아픔을 들어낸 삼층석탑이 있다. 보통 대웅전 왼편과 오른편에 명부전이나 관음전 등이 나란히 있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 어느 절에나 있는 산신각이 없다.
명부전은 요사를 지난 곳에 우두커니 홀로 있다. 명부전 주인인 지장보살과 눈을 맞추고 나와 계단에 앉았다. 어느새 나왔는지 요사 앞 의자에 하얀 나비 같은 비구니가 푸르른 오월의 하늘과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무슨 이야기를 하며 따사로운 햇살을 즐길까? 가까이 그의 얼굴을 본다면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찰나에 그는 손을 들어 나를 불렀다. 갈까 말까 망설임을 아셨는지 닁큼 오라고 손짓하였다. 손짓은 나풀나풀 하얀 나비의 날갯짓이었다. 합장을 하고 고개를 드니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고운 분이다.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답을 기다리는 눈빛이 천진하다.
"김해서 왔습니다."
천진한 눈빛이 순간 반가운 눈웃음으로 바뀌었다.
"김해서 왔어요? 김해 어데?"
어디서 왔냐는 차분한 말엔 높낮이를 느낄 수 없었다. '김해 어데?'란 말엔 짙은 반가움으로 소리가 들뜨고 높았다.
"김해 외동에 삽니다."
선문답으로 장난하고픈 마음을 참고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답을 했다.
"외동? 내 고향이 내동인데, 고향 떠난 지 오십 년이 되었구먼."
음색이 밝고 얼굴엔 소녀 같은 상큼한 미소가 있었다.
나는 그분에게 이름을 묻지 않았다. 언제, 어디로 출가하였는가를 물었다. 얼굴에 미소가 엷어졌다. 하얀 손수건으로 입가에 묻은 침을 닦으셨다. 왼편 뺨이 함몰된 것을 보았다. 까닭이 궁금했지만 입을 열진 않았다. 그분에겐 지금 모습은 그렇게 중한 것이 아닐 테니까.
"스물다섯쯤에 범어사 대성암으로 출가했지요"
삶에 있어 어떠한 전환 시기를 회상할 땐 웃을 수가 없을 것이다. 자그마한 그분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부산 범어사에서 수계하였다. 경북 문경 대승사에서 성철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수행을 하였다. 어느 날 봉곡사 주지로 왔다. 거의 폐허인 봉곡사를 애써 불사하여 지금처럼 만들었다고 하였다. 봉곡사는 장엄한 절은 아니지만 노승을 닮아 예쁜 절이다. 이런 수고(공덕)가 있었기에 노승은 봉곡사에서 어른 대접을 받으며 지내시는 게 아닐까?

중년의 비구니가 조심스럽게 살포시 다가왔다.
"차를 드릴까요?"
노승은 환하게 웃고 나는 뻔뻔하게 아메리카노가 있느냐고 물었다. 웃으며 뒤로 물러서는 중년의 비구니는 봉곡사 주지인 듯하였다. 노승은 대추차를 받았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몇 분이 머물고 계시냐고 물었다.
"네 사람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짧은 답은 우리 사이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건 선배인 노승을 배려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담았다. 나는 싱긋이 웃었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 맛, 새콤한 신맛, 목 넘김 뒤 시큼한 여운은 깔끔함이었다.
한 푼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도, 생계를 잊고 수행하는 일도 삶이다. 속인에겐 삶이 수행이며 승려에겐 수행이 곧 삶이다. 삶의 고단함은 속인이나 수행자에게나 같은 업이다. 다만 내 삶의 고단함이 주름으로 남았다면, 노승의 얼굴에선 그것을 볼 수 없었다. 주름 없이 해맑게 웃는 얼굴에서 나는 평상심을 봤다.

일어섰다. 다음 일정도 있으니 언제까지 노승과 이야기 할 수 없었다. 아마 이 결정은 일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30여 분 이야기하는 동안에 그분은 같은 말을 여러 번하였기 때문이었다.

"내 고향은 김해 내동인데......"
일주문을 나서며 뒤돌아 봤다. 대웅전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에서 향수를 느꼈다.
속세와 인연을 끓고 오로지 수행한 승려에게 고향이 가지는 뜻은 무엇일까?
화두 하나를 얻지 못하고 나서는 봉곡사지만 수수한 하얀 나비가 나와서 나를 청암사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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