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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용 May 01. 2023

화가와 과학자

과학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

"데카르트의 수학적 분석에 영감을 준 무지개의 가장 큰 특징이 뭐였다고 생각하나?"

(중략)

"자네는 이 현상의 핵심적인 특징을 놓치고 있군.  그의 영감의 원천은 무지개가 아름답다는 생각일세."

-리처드 파인만-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 중에서



미술을 공부하면 세상을 더 자세하고 아름답게 볼 수 있다고들 한다. 그리고 이 말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라 생각한다. 당장 미술을 시작하게 되면 빛에 대해 그림자가 어떻게 생기는지 배우기 시작한다. 크로키를 배울 땐 어떻게 대상의 특징을 빠르게 잡아내는지 배운다. 수채화를 배우게 되면 색과 물을 섞어 어떻게 원하는 색을 만들어내는지도 배운다. 그림을 그리면 원래는 알지 못했던 대상의 특징이나 색깔에 대해서 알게 된다.


대상에 대해 시각적으로 많이 알수록 더 많은 특징을 포착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세세한 부분들과 그 변화들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더 많이 알수록 더 많이 즐길 수 있는 것은 비단 미술만이 아니다. 음악을 감상하거나 스포츠를 관람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바흐의 음악을 많이 들어보고 잘 아는 사람은 처음 듣는 바흐의 음악을 들을 때 다른 사람보다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야구를 잘하고 즐기는 사람은 야구 경기 시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과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무지개의 원리를 아는 사람은 빛이 햇빛에서 나와 물방울을 거쳐 자신의 눈에 무지개가 보이는 과정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자신의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무지개가 사실은 두 개의 동심원으로 이루어진 형태라는 것을 상상하면서 무지개가 뜬 경치를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데카르트가 그린 무지개의 원리. 결국 무지개는 관찰자 뒤에서 온 태양 빛(그림 속 A, F)이 물방울(그림 속 B, C가 있는 원)에 반사되어 생긴 거대한 원형 띠(그림 속 반원)


이제 무지개를 반사시키는 물방울을 상상할 수 있다. 또 우리 뒤에 떠 있을 태양이 무지개의 근원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미술 감상을 좋아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술이론이나 색깔을 이름을 외우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음악의 경우에도 사람들은 음악을 듣는 것은 좋아한다. 하지만 화성학이나 작곡이론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과학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에서 과학 이론을 떠올린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과학자들도 그런 건 대부분 싫어한다. 하지만 무지개 색이 눈에 들어오기까지, 꽃향기가 코에 들어오기까지를 상상하는 것을 즐거운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 자세하게 보고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감상하는 사람이 대상을 더 자세하게 보고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그리는 것은 화가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였다. 1400년 초기에 활동한 화가 마사초는 사물을 그릴 때 인간의 눈으로 본 사물의 형태를 그리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사람의 시야를 통해 느껴지는 모습을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 멀리 있는 물체일수록 작아 보이고 무한히 멀어지게 되면 점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기하학적으로 이해하려 한 노력의 결과였다. 원근법은 사람들에게 시야에서 거리에 따라 나타나는 물체의 특징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고, 실제 경험에 가까운 그림을 통해 풍경을 더 사실감 있게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원근법을 이용한 마사초의 그림. '성 삼위일체'


이후에 등장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인상주의는 감성적인 이미지로 인해 그저 느낌대로 그렸을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클로드 모네와 같은 화가들은 빛과 색채를 통해 우리가 대상을 볼 때 느끼는 경험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모네는 시각적 경험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그림자가 생기는 방식을 끊임없이 연구했다. 색깔의 경우엔 과학이 발달하면서 물체에 닿는 빛이 달라지면 물체의 색깔도 달라진다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모네는 이 사실에 기반에 빛에 의해 계속해서 바뀌는 물체의 색깔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모네의 아름다운 그림은 모네가 자신이 연구한 색의 속성을 그림에 녹여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클로드 모네의 그림. '황혼의 산 조르조 마조레'


사실 과학도 인상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과학도 사실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세상을 그려내는 것이 중요한 목적 중 하나다. 빛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듯, 우리가 보는 방식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 과학은 자연의 행동에 대해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렸다. 개개인에게 세상을 보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물리학에서는 이 주관적인 방식 하나하나를 그림(picture)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슈뢰딩거라는 과학자가 세상을 본 방식이라면 슈뢰딩거 그림(picture)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그림은 실제로 화가가 그림 그리는 방식과 닮은 면이 있다. 먼저 자신이 세상의 어떤 인상에 집중할지 정한다. 그리고 세세하게 그릴지 전체를 담을지, 일종의 원근법을 정한다.


화가가 그리고자 한 것이 그림의 내용이듯, 과학자가 집중한 세계의 인상, 세계의 모습이 과학의 내용이다. 이 내용은 일종의 원근법, 가까이서 볼지 멀리서 볼지를 활용하여 표현된다. 나무를 볼지 숲을 볼지 정하는 것이다. 나무를 보는 것은 미분이라 불리고 숲을 보는 것은 적분이라 불린다. 미적분은 분명 어렵지만 미적분의 결과를 감상하는 것은 쉽다. 인상주의 그림을 그리는 기법은 매우 어렵지만 감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것과 같은 원리다. 우리가 생각하는 어려운 미적분은 그림을 그리는 기법에 해당한다. 하지만 감상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림을 볼 때처럼 보이는 만큼만 느껴지는 만큼만 보면 된다. 기법이 복잡할 뿐 과학이 하는 것은 우리가 늘 살아가면서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세상을 세부적으로 보고 또, 전체적으로 보는 것뿐이다. 이제 과학이 나무를 보는 법과 숲을 보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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