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법

by 백경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은 사주, 타로를 믿으시나요?

믿지는 않아도, 한 번쯤 재미로 해본 적은 있으실 거예요.

미래를 콕 집어 말해 주는 것 같다는 점이, 사람들을 꽉 잡아두죠.

“올해 연애운 좋다더라”, “이런 사람 조심하래” 같은 말 한마디에 마음이 조금 들뜨기도, 괜히 조심스러워지기도 하고요.

왜 이런 얘기를 꺼냈냐면,

오늘 소개할 이 책이 “우리의 미래가 이미 어느 정도 방향이 정해져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점집이 아니라, 세포 속 유전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점이 다릅니다.

(엄밀한 생물학 얘기는 나중에 따로 떼서 다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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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최정균의 《유전자 지배 사회》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부제는 “정치·경제·문화를 움직이는 이기적 유전자, 그에 반항하는 인간”입니다.

목차를 보면, 이 책이 어디까지 손을 뻗는지 감이 오는데요.

1장 가정: 사랑이라는 자기 기만

2장 사회: 혐오로 가장된 두려움

3장 경제: 자본주의 세상의 번식 경쟁

4장 정치: 자연스러운 보수, 부자연스러운 진보

5장 의학: 아프고 늙고 죽어야만 하는 이유

6장 종교: 인간은 태어나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에서 인간 유전체를 연구하는 유전학자입니다.

과학자가 이 거대한 주제를, 진화생물학과 유전학의 관점으로 쭉 꿰어 보는 책이죠.

이 책을 아주 거칠게 한 줄로 정리하자면, 저는 이렇게 적고 싶습니다.

“유전자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설계된 게 아니라,

자신을 최대한 많이 복제하도록 우리를 밀어붙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금 우리가 겪는 수많은 문제가 생긴다.”

조금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그래서 1장 ‘가정’과 3장 ‘경제’를 잠깐 짚어 보면서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1장 – 가정: 사랑이라는 자기 기만

1장의 핵심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우리가 이성을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이유가 사실은 유전자의 번식 전략이라는 거죠.

책의 표현대로라면, 거의 “사랑 = 유전자 번식 전략”입니다.

조금 거칠게 들리죠.

사랑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싸그리 없애버린 느낌도 나고요.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남녀 간 연애, 결혼, 부모의 자식 사랑까지 모두 유전자 입장에서는 “번식 프로젝트”입니다.

상대에게 끌리는 이유,

“나와 다른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게 유난히 눈이 가는 이유,

부모가 자기 시간을 다 쏟아부어 아이를 키우는 이유까지,


이 모든 게 유전자 입장에서는

“내 복제본을 더 많이, 더 오래 남기기 위한 투자”

로 읽힌다는 겁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부모와 자식조차 완전히 이해관계가 같지 않다는 거예요.

아이 입장에서는 “부모의 자원(시간, 돈, 정성)을 가능한 한 많이” 가져오고 싶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이 아이만 챙길 수는 없고, 내 건강, 다른 형제, 내 노후까지 감당해야” 하니까요.

책은 이런 긴장을 교육열과 능력주의로 연결합니다.

“우리 애만큼은 뒤처지면 안 된다”는 절박함,

좋은 학군, 스펙, 학원에 모든 걸 갈아 넣는 한국식 양육이 사실은

“경쟁에서 밀리면 생존 자체가 위협되던 시절에 각인된 유전자 프로그램이,

21세기 한국에서 과열된 형태로 폭주하는 모습”

일 수 있다는 거죠.

사랑이 가짜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진짜로 사랑하기 때문에 유전자 전략이 더 강하게 작동한다고 보는 편이 맞을 거예요.

다만 이 책은 우리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입니다.

“너의 가장 순수한 사랑조차,

유전자의 각본 위에서 연기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질문이 꽤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3장 – 경제: 자본주의 세상의 번식 경쟁

3장은 경제와 자본주의를 정면으로 겨눕니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이렇게 읽습니다.

“남보다 유리하게 번식하려는 유전자 경쟁이,

경제 시스템의 언어로 번역된 것.”

우리가 명품차, 고가의 아파트, 브랜드 가방, 스펙, 직장을 그렇게까지 과시하는 이유는 뭘까요?

책은 여기서 ‘값비싼 신호’(costly signal)라는 개념을 꺼내옵니다.

일부러 비싼 물건을 걸치고,

일부러 비싼 동네에 살고,

일부러 힘든 시험을 통과해 지위를 얻는 행동들.


이건 그냥 허세가 아니라, 유전자 입장에서는 이런 메시지입니다.

“나는 경쟁에서 이길 능력이 있는 개체다.

나와 짝을 이루면, 너와 우리 아이가 더 유리해질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과시적 소비는

“번식 경쟁에서 우위를 증명하는 신호”**로 작동합니다.


문제는, 이 경쟁이 끝이 없다는 거예요.

누군가 더 비싼 차를 사면, 나는 그보다 더 비싼 차로 갈아타고,

누군가 더 비싼 학군으로 이사 가면, 나는 더 큰 대출을 껴서 그 위를 가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

사교육

스펙 경쟁

기업의 착취 구조


같은 것들이 서로 엮여 “번식 경쟁의 군비경쟁 버전”처럼 폭주합니다.

책은 이 지점을 꽤 차갑게 파헤쳐요.

사주·타로 vs 유전자: 다른 방식의 ‘미래 읽기’

글의 처음에서 저는 사주와 타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사주와 타로는

“이런 사람 조심해라”,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며 우리의 미래를 점쳐 줍니다.

생물학, 유전자 이야기도 비슷하게 미래를 말합니다.

“번식하기 위해 연인을 찾을 것이다.”

“나와 유전자가 다른 상대에게 더 끌릴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모으려 할 것이다.”


방식은 다르지만, 둘 다 우리의 행동 패턴과 미래 방향을 말해 준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도 있습니다.

사주·타로는 상징과 해석에 기대는 이야기라면,

유전자는 통계·실험·진화론 위에서 만들어진 설명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차이는 이겁니다.

유전자는 100%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지는 못한다.

우리의 취향, 본능, 성향에 유전자의 힘이 매우 강한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는 결국 유전자의 꼭두각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저자는, 그리고 저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유전자는 출발점과 경향을 정해 줄 뿐,

그 위에 얹히는 환경, 제도, 개인의 선택은 여전히 거대한 변수입니다.

무엇보다 인간만은, 자기 본성을 의식하고 거슬러 볼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고요.


저도 여기서 조금 무리하게

생물학적 결정론을 사주·타로와 엮어서 설명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 보시면,

“우리가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건 아닐까?”라는 불편한 질문과 함께,

동시에 이런 질문도 생깁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까지 유전자에 저항할 수 있을까?”

이 불편함과 질문이,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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