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GV했다. 보통 내 채널 색깔이 그러하듯, 그 행사도 영화 비평이라기 보다는 영화 해설에 가깝다.
그런데 행사를 준비하면서 영화를 파헤치다보니 이 작품이 어느 정도의 '여성 대상화'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차마 그 자리에서 말하지는 못했다. "여성분들은 유스케처럼 저렇게 질척이는 남자 어떻게 생각하시나 모르겠어요 하하하." 같은 싱거운 소리나 하다가 대충 넘어갔을 뿐이다.
1부의 흑백 현실에는 사랑을 이루지 못한 두 남자, '유스케'와 '겐지'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모두 '한국인 여성'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가슴 한 곳에 묻으며 살아가고 있다. 1부가 색을 잃은 흑백의 시공간으로 그려져있는 것은, 그들이 그렇게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로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흑백의 시공간에 다시 색을 채색하려면 그들의 사랑을 완성시켜주어야 한다. '한국인 여성 조감독' 미정이 통역해서 들려주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듣던 '한국인 남성 감독' 태훈은 그런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태훈은 조감독 미정을, 2부의 이야기에서 그들의 사랑을 이루어주는 인물로 등장시킨다. 그녀는 그 남자들이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한국인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스케는 겐지의 '아들'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2부에 등장하여 1부에서 '한국인 여성'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유스케 본인의 로맨스와 겐지의 로맨스 모두를 '일거에 달성할 수 있는' 남성으로 거듭난다. 그러니 2부에서 유스케는 반드시 미정과 사랑에 빠져야만 한다. '한국인 여성'과 못다 이룬 로맨스를 이루어야만, '흑백'의 시공간으로부터 벗어나 '천연색'의 판타지아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그래서 2부에서 유스케는 미정을 향한 자신의 욕망을 단 한 순간도 숨기지 않는다. 그 욕망의 표현이 '노골적임'과 '솔직함 혹은 순박함'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와세 료가 가진 그 선하디 선한 마스크의 공헌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여튼 2부에서 '한국인 여성' 미정은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두 남성의 영혼을 한 육신에 일체화한 '유스케'의 사랑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욕망의 방향이 분명한 '2영혼 1육신의 유스케'와는 달리, 미정의 태도는 애매모호하다. 그녀는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유스케에게 단호하게 선을 긋지도,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도 않는다. 그저 유스케의 호의와 호감을 단호하게 거절하긴 곤란하다는 듯한 태도를 취할 뿐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프로덕션 여건 상 2부의 시나리오를 3일 만에 짜낸 탓에 생긴 빈틈 중 하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마지막 키스신을 여배우에게 알리지 않고 감독과 남배우 둘이서만 합의한 뒤 기습적으로 촬영한 것'도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건재 감독은 이후 배우 김새벽 씨에게 '싹싹 빌었다'라고 했지만, 김새벽 씨도 촬영 중에는 당황하지 않고 '키스를 기습적으로 당했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소화'해냈지만, 이런 해프닝을 외면하고 그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판타지아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딘가 분명 찝찝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장황하게 풀어놓은 모든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을 좋아한다. 그게 문제다. 이런 고민들을 과연 어디로까지 확장시켜야할지, 솔직히 말해서 '아니 그런 식으로까지 생각하면 도대체 만들 수 있는 이야기가 뭐가 있어?'라는 내 내면 깊숙한 곳의 의문에까지 나는 답을 내놓아야 한다. 아마 거기까지 답을 다 내어놓아야 이런 내 나름대로의 '비평'도 '해설'만 올리는 나의 채널에 올리는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