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우
삶의 모습은 무해와 유해로 단순하게 나눌 수 없다. 서로의 이해관계 충돌로 다투기도 하고, 깜빡 실수도 하고 그에 대한 사과도 하고, 다른 의견을 말하면서 그럼에도 존중하면서 나아가는 복잡성에 가깝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무해하다며 좋아하던 사람들이 화면 밖에서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탑승 시위에 대해 피해를 준다며 분개한다. 이렇듯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계는 매끄러운 화면 바깥, 서로 부딪치는 진짜 관계가 발생하는 영역이다.
무해함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으로 그것을 궁극적 목표로 설정하지는 않고 싶다. 진짜 무해해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다. 삶의 모습은 무해와 유해로 단순하게 나눌 수 없다. 서로의 이해관계 충돌로 다투기도 하고, 깜빡 실수도 하고 그에 대한 사과도 하고, 다른 의견을 말하면서 그럼에도 존중하면서 나아가는 복잡성에 가깝다. 그 가운데 스스로 어떤 면으로는 얼마든지 유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경계하면 되지 않을까?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무해하다는 이름표를 붙여주며 아끼는 풍경은 평화롭다. 무해한 것들을 사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무해한 존재가 되겠다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위해 2022년 버전의 또 다른 완벽주의에 스스로 가두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모두 화면 밖에 실재하는 인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