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다니는 생각은 천재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또라이'의 특징이기도 하다. 천재와 또라이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천재는 날아다니는 생각을 잡아 처음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또라이는 그렇지 못하다. 생각이 그냥 계속 날아간다. 자신의 생각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마구 날아 간다.
음악을 작곡 할때, 작곡가는 '도-레=미=파=솔=라=시'의 7음 중에서 한 음을 뽑고, 이어지는 음 또한 7음중에서 또 하나를 뽑는다. 처음에 '레'를 뽑았다면, 다음에는 '솔'을 뽑고, 그 다음에는 '도'를 뽑는 식으로 멜로디를 만들어간다. 이때 각각의 7음 중에서 한 음을 뽑는 것은 '선택'이다. 그리고 이렇게 뽑힌 각각의 음들을 이어가는 것은 '결합'이다.
과학과 비과학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검증 가능성'을 주장한다.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이론만이 과학적 지식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포퍼는 인간의 경험은 시공간적으로 한계가 있기에 모든 것을 다 경험할 수는 없다며 논리 실증주의의 검증 가능성을 비판한다.
포퍼는 과학적 지식과 비과학적 지식의 기준으로 '반증 가능성'을 내세운다. '백조는 희다'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백조를 검증할 수는 없지만, 검은 백조 한 마리만 발견되어도 그 가설은 틀린 것이 된다. 모든 백조를 검증할 수는 없지만, 검은 백조 한 마리만 발견되어도 그 가설은 틀린 것이 된다. 모든 지식은 이렇게 반증의 사례가 발견될 때 까지만 한시적으로 옳은 것이고, 과학적 지식은 이렇듯 반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포퍼에 따르면 마르크스 이론이나 프로이트 이론은 비과학적이다. 반증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내부의 논리 구조는 그럴듯하지만, 이론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가능성 자체가 아예 닫혀 있다. 그러나 포퍼의 과학과 비과학을 나누는 반증 가능성에는 시간이라는 요인이 빠져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성되고, 변화하는 '구성주의적 세계관'과는 거리가 먼, 낡은 실증주의적 세계관의 변종이다. 주체적 행위의 개입이 불가능한, 인식의 주체와 개체가 철저하게 격리된 세계관일 따름이다.
21세기에는 지식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 자체가 그리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증명해야 하고, 확인해야 할 '객관적 세계'에 관한 신념 자체가 폐기된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지식의 옳고 그름보다는 '좋은 지식'과 좋지 않은 지식'으로 구분하는 것이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다.
좋은 지식의 기준은 '편집 가능성'에 있다. 현재진행형의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변화를 가능케 하는 주체적 행위가 가능한 지식이 좋은 지식이다. 편집 가능성이 있는 지식이 좋은 지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