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다 비워내며 살겠습니다.
나레이션 : 뵨사마 이병헌
박서보(朴栖甫, 본명: 박재홍) 서양화가. 1931년 경상북도 예천에서 태어나 1954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1956년 동방문화회관화랑에서의 4인전을 시작으로 화단에 나왔다. 한국 전위미술운동의 출발을 알리는 한국현대미술가협회전의 핵심 멤버로 앙포르멜 미학을 널리 알리는 데 선두주자로 활약했다.
〈원형질〉 연작으로 대변하는 1950년 대말에서 1960년대 중반까지는 서구 및 일본 앙포르멜을 모방한 뜨거운 추상미술의 전개에 관심을 보였다. 이 시기의 작품은 강한 내면성을 추구하며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의 아카데미즘에 대한 강한 반발을 드러내고 있다.1970년대에는 한국미술의 국제화라는 슬로건 아래 한국미술협회를 중심으로 추상미술 운동을 전개했다. 1960년대 말부터 시도했던 〈묘법〉 연작을 1970년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발표해 한국 '단색회화'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1980년대 들어와서 선묘 대신에 한지의 물질적 특성과 질감을 살리는 데 관심을 갖고 수성물감에 젖은 한지를 굵은 연필심으로 긋는 행위를 반복했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박서보 회화 40년전'을 가졌고, 2008년에는 뉴욕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Empty the mind'전을 열었다. 이밖에도 다수의 국내전과 해외전에 참가했다. 수상 이력으로는 옥관문화훈장과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다.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
“집중을 통해서 날 비우는 거예요."
“나는 아무것도 생각 안하려고 그리는 겁니다,"
박서보는 아들의 국어 공책 낙서에서 착안한 반복적인 연필 긋기를 연구하면서 '묘법'이라는 시리즈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1967년의 작품은 캔버스에 흰 유화물감을 바른 후 국어 공책의 방안지를 모방한 네모 칸을 연필 긋기로 채우는 식으로 나타났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건 사투하는 거야. 죽음과 싸우는 거야. 그렇지만 나는 즐겁다는 거지
내가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어. 위대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 갖춰야 하는 기본 조건 두 가지. 첫째는 시대를 통찰하는 능력이고, 둘째는 식을 줄 모르는 열정. 세자르라는 조각가가 만약 석고를 살돈이 있었다면 석고를 떠서 조각했겠지. 전쟁통에는 그럴 돈이 없어. 그런데하고 싶은 열정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서 막 돌아다녔을 거야. 돌아다니다보니 고물이 보이고, 폐차도 보이고, 그 덩어리를 압축하면서 자기 작품을 만들었겠지. 돈이 있었으면 그런 폐물로 작품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궁핍이나 가난은 창조의 어머니야. 그 전제는 예술에 대한 열정이 막 치밀어 오르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거고. 그런 사람의 눈에는 뭔가가 띄어.
‘되도록 책을 많이 읽어라. 대신 읽고 나서 절대로 기억하지 말고 다 버려라.’ 왜냐면 그 책에 실린 매혹적인 구절들이 사람을 노예처럼 잡아당기거든. 그러면 그것에서 벗어나지를 못해요. 책은 다만 내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보약 먹듯이 보는 거야. 보약은 국물만 따라 마시고 버리는 거잖아? 책에서 얻은 지식을 나열하고 살면 자기 이야기는 어딨어?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해.
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그 구하고자 하는 것이 보이게 돼 있어. 나는 절실하게 구하고 싶어 했으니까 눈에 보인 거지.
전까지 치열하게 산 사람들에게는. 젊은 날의 치열한 경험이 되살아나면서 또 다르고 새로운 생각을 생산해낼 수 있거든. 젊을 때 치열하지 않았으면 그 나이에 이른다고 그렇게 되지 않아.
한국 단색화의 아버지’라고 하거나. 왜 그런 줄 알아요? 나는 한국에서 공부했고, 한국에 머물면서 단색화 운동을 했거든. 갖은 욕설 들어가며 운동해서 체계화를 시켰어. 그걸 전 세계에 ‘이거다’ 하고 내놓아서 그래. 또 수많은 제자들을 키워내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