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이야기 7. 자꾸 문 닫고 들어왔다고 하지 마

내가 그 정도는 아니야

by 아보카도

매일은 아니지만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큰애는 밤중에 전화를 걸었다. 특히 크고 작은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기준을 잡고 싶을 때 통화가 길어졌다.


최근에 제일 길었던 통화는 동아리 선택이었다. 중학교 입학한 뒤 멋모르고 선택했던 동아리가 창체가 아니라 자율이었을 때 그 파장을 3년 내 겪으며 울고 웃었던 멀지 않은 과거에서, 아이는 다시 넘어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부랴부랴 책을 하나 사서 기준점을 정한 뒤 생기부 500자씩 적힐 동아리 선택에 신중을 기했다. 과정은 예상을 빗나간 것도 있었지만(화학 학술 동아리에서 탈락할 줄이야), 결과를 놓고 보면 제법 괜찮았다. 범위를 넓게, 독서를 끼도록 어찌저찌 잘 짜였다.


수업 3주 차. 전반적으로 고등은 중등과 달랐다. 대입의 최전선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선생님들께, 수업 때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어떻게 그 많은 내용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설명할 수 있는지 보고 있노라면-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게 된다고 했다.


큰애 목소리는 어제 유난히 힘이 없었다. 미세먼지 때문인지 부족한 수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핸드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의 울림만 봐도 지침이 느껴졌다. 그래도 기쁜 일이 있다면 R&E과제에 선생님 피드백이 꽤나 긍정적이었다는 거였다. 낮에 영재원에서 전달받은 전국사사대회 수상권에 들었다는 소식을 전했더니 아이는 짧게 웃었다. 기쁜 틈은 언제나 잠시다.


“내신이 문제지.” 아이는 수학 내신에서 넘어졌던 2년의 과정을 머리보다는 몸으로 아프게 느끼고 있었다. 수학과목에서의 사고과정을 뜯어고치느라, 지난 겨울방학 내 12 시수나 되는 과학은 거의 손도 못 대고 6 시수인 수학에 시간을 쏟아부은 터다. 하루 열세 시간, 혼자 싸웠던 시간이 어떻게 자리 잡아 싹을 틔울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큰애 수학 성적은 절대 일정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지만 고도로 높아지지도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어떤 구간을 뚫지 못하는지, 보는 사람이 힘겨울 정도였다. 그렇게 과학고에 가서, 아이는 수학을 ‘두려워하지 않는’ 친구들을 지켜볼 기회를 얻게 됐다. 그건 정말이지 행운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풀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는 아이의 관찰기. 수학 좀 한다는 아이들의 느낌은 그랬다.


모의고사 성적은 수학이 2등급 초반으로, 상승세를 유지했으나 안정권은 아니었고, 과학고에서 살아남기에는 부족했다. 칭찬을 해주면서도 ‘마의 구간‘을 언제쯤 통과할지, 그 과정에서 타 과목이나 활동 간 조율을 어떻게 해나갈지 조마조마하다.


나는 큰애 기질이 예민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아뿔싸. 기숙사 생활 2주 만에 예민함 폭발이었다. 갑자기 달라진 아이 모습에 다들 bump 상태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애한테 싸가지 좀 챙기라고 소리를 질렀다. 큰애도 참지 않고 소리를 질러댔다. 남편도 아이 편을 드는 척하며 어떻게든 이 어려운 싸움에서 돈 안 내고 버틸까 소릴 질러댔다. 나는 학총이 끝난 뒤, 이 힘든 싸움에서 아이가 이길만한 무기를 쥐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남편은 안 낸다고 버텼고, 아이는 안 그래도 힘든데 엄마 아빠가 더 힘들게 한다며 폭발했다. 길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겠지만, 나는 며칠을 앓아누웠다.


아픈 건 꼭 나쁜 일은 아니다. 고민이 max였다는 반증이며, 내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순간을 직면하는 통과구간이라, 어떤 면에서는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나는 또 아픈 길목을 아이 손을 놓지 않고 건너고 있다.


큰애는 주위를 둘러봤을 때, 아무래도 자기가 문 닫고 들어온 것 같지는 않다며 자존심을 부렸다. 어차피 들어온 이상 여기서 살아남을 거라며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내는 것 같았다. 대다수 아이들의 학원빨이 한 학기를 갈지 일 년을 갈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순하게 생겨서 독한 구석이 있어.’ 통화를 끊고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아아. 내일이 다시 금요일이라니. 내일 돌아오는 차 안은 부디 평화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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