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유지장치의 부재
이건 건망증의 문제와는 좀 다르다. 주의력이 지속되지 못함에 따라, 기억해야 할 정보도 끝까지 붙잡지 못하는 현상. 머릿속에서 떠오른 생각이 아련하게, 언제 내 머릿속에 들어왔었냐는 듯 스르륵 흩어져버리는 경험이 있는가? 분명 양치를 하면서는 '물통 챙겨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해가 중천에 뜬 시간이 되어서야 ‘아..우리 딸 오늘 체육하는데, 목마르겠다ㅠ’ 며 늘어놓는 걱정과 미안함..하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일상적인 것이라,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늘 반투명한 막이 뇌를 감싼채로, 선명하지도 개운하지도 않는 느낌에 시달리는 것 역시, 그게 이상하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할정도로 나에겐 일상적인 것이었다.
나의 주의력 결핍을 진지하게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첫째를 낳고 나서였다. (MBTI를 신봉하지는 않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ESTJ 성향이 다분한 남편 관점에서는, 외출을 할 때마다 주방에 몇 번을 들락이고, 아이 방에도 몇 번을 들락이고, 그렇게 하는데도 늘 한 가지, 두 가지 빠뜨리는 물건이 발생하는 내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육아 참여도를 논하는 자리는 아니니 각설하고) 이런 나의 부주의와 신랑의 성향은 늘 싸움의 불씨를 조마조마하게 지펴갈수밖에 없었고, 질책 아닌 질책, 추궁 아닌 추궁이 일상적인 남편과 큰 마찰과 갈등을 빚는 것도 수차례였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나의 자존감을 꺼뜨렸고, '내가 산만하긴 한거지' 라는 어렴풋한 인식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것은 쉽게 나아지지는 않았고, 그렇게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신랑은 이런 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며, 나 또한 최대한의 섬세함을 발휘하려 노력해가며, 다름과 부족함을 함께 수용하는 방법을 터득해 왔다.
그 동안, 딸이 유치원 3년을 다니는 동안, 그녀의 인지능력이 판단이라는 것을 가능하게 할 만큼 성장할 동안. 그 아이는 '엄마가 미안, 깜빡했어', '아 엄마가 또 안 챙겨줬네 미안해' 라며 사과하는 모습을 두 손 두 발을 다 합쳐도 셀 수 없을 만큼 마주할 수밖에 없었고, 어느 날 부터 그 아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엄마는 깜빡쟁이에요, 맨날 깜빡했데요' 라는 농담과 진담 섞인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민망하고 가끔은 짜증도 나고. 다른 아이들은 다 가지고 있는 그것을 우리 아이만 없이 하루를 보낼 생각하면 한심하고. 이제 초등 1학년이기에 아직까지 나로 인한 큰 사고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괜찮다' 넘길 수는 없는 흠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점은, 이런 나의 깜빡병이 일상화 되었을 때, 그것이 삶의 디폴트 값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하나 둘 씩 흘리는 것이 당연하고 누구나 다 그런 것인줄로 아는 것, 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모델링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말이다. 엄마라는 위치가 힘든 이유는 사실 특별할 게 없다. 아이가 어찌 될까봐 저찌 될까봐 생기는 불안과 긴장 이면에는 늘, 엄마는 완벽하지 않고,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전제하고 있는데, 엄마마다 그 '완벽하지 않음'에서의 편차는 있을테고, 결국은 그 편차가 아이의 어떠함을 만드는데 영향을 미치는 건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약을 처방받은 후 사실 만족감은 다른데서 오는게 아니었다. 커피로 굳이 각성되지 않아도 빠릿빠릿하게 보고서를 쓸 수 있다는 점도 좋긴 하지만, 오늘도 나는 딸의 가방에 물병을 빠뜨리지 않고 챙겨줄 수 있었음에 안도한다. 말로는, 나는 내가 내 삶에서 1순위라고 말하고 다니고, 나의 사회적 역할, 직업적 역량이 가장 소중하다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제대로 해 내지 못하고, 해 낼수 없을거란 무력감에, 엄마라는 이름을 아직까지 마주하기 어려워 던지는 자조적인 농담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