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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니스 Aug 30. 2022

우영우 신드롬의 단상

자폐는 스펙트럼으로 이해해야 한다.

지지난 주에도, 지난주에도, 오늘도. 나는 어김없이 자폐스펙트럼 아동을 만났다. 세상 모든 자폐 아동들이 똘망똘망하고 맑은 눈망울을 굴리며, 상동 행동 마저도 귀여워 보이는 우영우 같다면, 세상은 훨씬 더 밝고 살만한 곳이 되겠지만. 현실은 현실이고, 우영우는 판타지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 20여년 전에 "우리 아이는 자폐가 있어요"를 외치며 국민들의 눈물을 훔치던 초원이가 있었다면 2022년에는 신파를 줄이고 친밀감을 덧입힌 귀여운 영우가 있을 뿐. '증상'의 고증은 잘 되었으나, 현실의 반영은 없는 허구만 있으며, 자폐는 그렇게 한층 더 오해와 이미지의 각인 속에 실체를 잃어가는 듯하다는 생각은 나만 하는 것일까. 오늘도 '우리 아이가 자폐일까요' 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많은 부모들이 병원의 문턱을 힘겹게 넘어선다.


나만 해도, 소아정신과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기 전에는 성인 위주의 풀베터리 검사만 진행 했었고, 그렇기에 자폐에 대한 이해의 폭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입사 초반에는 산만하고 엉뚱한 소리만 해대며 검사 진행을 어렵게 하는 아동들을 만나면, 10명 중 7-8명은 단순 ADHD(Attentio deficit/Hyperactivity disorder의 명칭)로만 진단을 고려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 때 마다 돌아오는 원장님의 탐탁치 않은 질문은 '그래서 이 아이는 뭡니까?', '얘는 자폐가 아니란 말입니까?' 였고, 그 질문이 스트레스와 공포로 여겨질 때즈음, 뉴질랜드에서 심리검사를 위해 귀국한 만 6세의 남자 아이를 만났다. 뉴질랜드에서 진행 된 ADOS 검사에서 전문의는 이미 Autism spectrum disorder로 진단 내렸으나, 아이의 엄마는 '그래도' 하는 마음으로 귀국하여 우리 병원에 내원하게 된 것이다.


똑똑하지만, 시크했던 그 아이는 손에 작은 맨토스를 한 줄 들고 있었는데, 검사 시작 전 '맨토스 두고 갈래?' 라는 엄마의 질문에도 시큰둥 하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등을 돌렸고, 그대로 검사를 시작하였다. (거기서라도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본격적인 검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기본적으로 이름, 생년월일, 학교 생활, 친구관계 등을 간단하게 물어보는 시간을 가지는데, 이것은 아동이 본인과 관련한 기본 정보에 대한 인지와 표현이 가능한지 확인할 뿐 아니라, 상대방의 질문의 맥락과 의도를 잘 파악하는지, 소위 '안부묻기' 와 같은 스몰토크가 가능한 아이인지, 이러한 대화 양식을 통해 문장 구성력을 비롯한 표현력, 어투, 억양 등의 특이점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뉴질랜드에서 왔던 그 소년은 지능이 정상 범위에 속하는 똘똘한 아이였기 때문에, 기본적인 개인정보는 정확히 보고할 수 있었고, 학교 생활에 대해서도 검사자의 질문에 맞는 답변은 가능한 상태였다. 나는 3시간 남짓한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그 아이가 어느 정도의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판단했고, 그래서 ADHD로 진단 고려할 수 있겠다고 보고서를 제출했다. 다른 검사자와의 여담을 통해 들었지만, 원장님은 그 보고서가 몹시나! 마음에 들지 않았고...나 역시도 그 아이를 계기로 '의사소통의 질적인 결함' 을 평가 하기 위한 기준점에 상당한 변화를 주어야 했다.


이 이야기를 구구절절하는 이유는,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장애가 우영우 처럼 뚜렷하지만은 않다는 말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폐 스펙트럼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과몰입을 비롯한 제한적인 관심사, 반복되는 상동적인 행동이나 어구, 의사소통의 결함 이 세가지가 반드시 확인되어야 하는데, 과몰입이나 상동적인 행동은 눈에 띄는데 반해, 의사소통의 질적 결함이란 것은 사실 캐치하기 쉬운 문제가 아니다. 장황하게 본인의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은 비교적 자폐를 쉽게 의심하고 구분짓게 해주는 특징이며, 기능이 좋고, 지능이 높을 수록 의사소통 상에서 나타나는 질적인 결함은 미세하거나 sharp 한 관찰을 요하는 경우가 많다. 질적인 결함이라 함은, 단순히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고, 사회적이고 관습적인 표현들을 사용하는지(안부묻기와 같은), 관습적인 제스추어와 같은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하는지, 자신의 관심사 이외의 주제를 가지고도 대화의 개시가 가능한지 등을 가지고 판단하고 평가되며, 자폐로 진단 받는 많은 아이들이 대화를 진행할수록 주고 받기가 원활하지 않고, 그 깊이나 다양성에서 제한이 현저함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보호자들은 아동이 중증 자폐로 무발화나 언어 지연이 확연하지 않은 이상, 아이가 표현력이 부족해서, 어렸을 적 언어지연이 있었어서 등의 이유로 단순히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정도로만 생각할 뿐, 그것을 자폐 스펙트럼의 일부로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그만큼 자폐라는 장애를 설명하고 설득시키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닐 때가 흔하다. 오은영을 기대하며 정신과를 찾아오듯, 자폐라는 이미지는 우영우에 맞춰져 전파되고 각이되면서 진짜 자폐스펙트럼의 이해의 폭을 더욱 좁히는 것은 아닐까.


자폐는 스펙으럼으로 이해되는 장애이다. 정말 경하면 ADHD 부주의형이나 사회적 의사소통 장애로 오인될 수 있고, 각 증상의 정도에 따라서도 의사 마다 진단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할만큼 기준점을 어떻게 두고,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이해의 폭이 달라지기도 한다. 많은 아동들은, 사실, 우영우처럼 귀엽지도 않고, 서울대를 나왔으나 헌신적으로 딸을 뒷바라지 하는 아빠도 없으며, 부모의 짱짱한 대학 동문을 상사로 두고 있지도 않은 것이 현실이다. 자폐인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만으로 장애에 대한 인식과 이해의 사회적 수용폭이 달라졌다며 자화자찬 하는 것은, 여전히 그들에 대해 정확한 인지와 이해가 이루어지지 못함에 대한 반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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