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털어놓고 싶어서.
아빠에게.
아빠. 저는 중국에 온 지 벌써 6개월이 다 되어가요. 우리가 중국을 오게 되는 과정이 나름 치열하고 험난했지만, 잠시 한국 땅과의 이별을 고하던 그날 새벽까지 내가 그리워했던 것은 아빠의 기도였단 걸, 아실까요?
중국에서의 생활은 여유롭지만 알차고 그만큼 무료할 새도 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어요. 아침 일찍 아이들은 학교로 떠나고, 덕분에 같이 부지런을 떠느라 아침 시간이 길어진 저는 30분 거리를 자전거로 달려 숨을 고르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몸매도 함께 가꾸는 일석 삼조의 효과를 보고 있어요. 한국에서의 내 일이 좋아서, 그걸 포기하지 못하고 처음엔 속상해했지만, 막상 여길 오니 탄탄하게 내 스스로를 보듬고 가꾸며 재정비하는 시간이 되고 있어서 감사하고 만족스러워요. 아빠도 부지런한 날 보면 좋아할 텐데요.
아, 골프도 배워요. 오늘 드라이버 들어갔어요. 난 어딜 가나 선생님들한테 이쁨 받는 거 같아요, 열심히 하면 그 노력을 알아주나 봐요. 좀 더 빨리 골프를 배울걸. 아빠랑 같이 필드라도 한 번 나가 봤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들이 자주 떠올라요. 아빠의 즐거움을 나는 왜 이해하지 않고 함께 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을까. 미안하고 아쉬워요.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요. 언제라도 나는 떠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으로 밀려와요. 아빠는 어땠을까. 살아가야 하는 나는, 이토록 막연히도 내 삶이 두려운데, 죽음의 습기가 날마다 가까이 오던 아빠는 얼마나 슬프고 외로웠을까. 난 왜 아빠의 앙상하고 차갑던 손을 더 많이, 꼭 잡아주지 못했을까. 아빠의 영은, 하늘에 있을까, 내가 보일까. 매정하고 못난 딸을, 잊어버렸을까.
나는. 내 삶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요.
천국을 믿는 믿음. 그것만으로 되는 걸까요.
영안실에서 마주했던 감기지 않던 아빠의 눈이 날마다 머릿속에 가득 차요. 죽음이, 그토록 생경하고 낯설면서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어요. 애도의 시간, 나만의 애도. 그게 끝나지를 않아요. 애초에 애도를 시작하지도 못한 거 같아요. 늘 그렇듯, 외면하고 모른 척 지나가려는 걸까요. 이 생을, 나는 무엇으로, 어떤 모습으로 채워가야 할까요.
완벽하지 않았지만 나에겐 절대적이었던 아빠의 존재는, 그 신뢰만큼의 큰 구멍을 남겼어요. 늘 인생이 공허하다 생각했지만, 요즘 같이 그 공허가 텅텅 거리며 나를 집어삼킨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나는, 빈 웃음으로 혹은 나름의 열심으로 그 구멍을 메꾸기에 바빠요. 그래서 나름의 알차고 바쁜 하루의 끝은 언제나 슬픔이 매워져요. 어찌할 바 모르는 슬픔. 선명하지도 않은 아빠와의 기억을 보듬으려 바둥거리는 애처로움. 그걸 또다시 외면해 버리려는 피상성. 헛된 것들에게서 의미를 찾고, 나를 살릴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희망을 품는 내가 우스워요.
아빠,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요?
그리움을 담아낼 말이 도저히 떠오르질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