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어머니, 나

실패 전문가의 실수에 대한 어리석은 기록

by 노일영

이제 한 달 정도가 지났다. 엄마가 병원에서 정식으로 치매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한 지. 치료라고 해봐야 특별한 것은 없다. 아침저녁으로 두 번 약을 챙겨 먹는 것 정도가 전부다. 아침에는 알약이 두 개고, 저녁에는 알약이 하나다. 이게 다다. 치매라는 단어가 주는 막연하고 무거운 두려움에 비해 너무 별것이 없어서 오히려 황망할 정도다. 이게 전부라니.


치료는 별것 없지만 일상은 그렇지 않다. 이전까지는 엄마가 알아서 하겠거니 맡겨두었던 것들을 모두 내가 직접 챙겨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씻어야 한다고 말을 해줘야 하고. 양치를 할 때에는 구석구석 깨끗이 혀도 닦아야 한다고 옆에서 잔소리를 해야 한다. 벗은 옷은 빨래통에 넣으라고 얘기해야 하고 입을 옷도 골라줘야 한다. 따듯한 물이 나오지 않는다며 보일러가 고장 났다고 짜증을 내면 보일러에 문제가 없는 걸 확인하고 물을 틀어놓고 조금 기다려야 따듯한 물이 나온다는 사실도 매일 새롭게 알려줘야 한다.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싶어 하면 6월 한여름에는 롱패딩을 입으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루에 몇 번씩 해야 하고, 롱패딩에 주머니가 있어서 좋다는 핑계에 지금 입고 있는 원피스에도 주머니가 있다는 사실을 매번 새롭게 알려줘야 한다. 손톱과 발톱을 확인하고 깎을 때가 됐다고 알려줘야 하고, 절대 몸에서 떼어두지 않는 작은 손가방에 가득 찬 온갖 쓰레기도 틈틈이 비워줘야 한다. 식당, 카페, 쇼핑몰, 공항 등 공용 화장실에 간다고 하면 절대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고 경고를 하지만 그것마저 통하지 않아서 이제는 가방에 들어있는 담배를 뺏어서 들고 있어야 한다. 화장실에서 나오면 가방에 잔뜩 챙겨놓은 화장실 휴지를 다시 꺼내야 하고, 식당에서 나올 때는 이쑤시개를 한 움큼 집는 걸 말려야 한다. 카페 직원과 사장님을 헷갈려 어린 직원에게 자꾸 최근 출산한 아이 얘기를 물으면 대신 가서 사과해야 하고 매일 병원에 가고 싶다고 만들어내는 온갖 핑계를 다 들어줘야 한다. 몸에 맞지도 않는 브래지어를 억지로 차고는 소화가 안 되고 두통이 생겨서 죽을 것 같다는 얘기를 들으면 아침 일찍 옷 가게에 데려가 몸을 조이지 않는 브라톱을 새로 사줘야 한다. 브라톱을 사러 간 옷 가게에서 사고 싶다고 골라 온 수많은 옷가지들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건 뭐 일도 아니다. 대충 닫아서 열려있는 냉장고 문을 확인하고 꽉 닫는 일, 가스레인지 상태를 확인하는 일 정도는 이미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자주 있어온 일이라 이제 숨 쉬듯이 익숙해졌다. 이모들이나 친구들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이상한 말을 하면 나중에 따로 연락해 엄마의 상태와 상황을 알려주고 양해를 구하는 일도 익숙하다.


이 정도가 최근 한 달, 아마 정확하게 따지면 한 달이 조금 안 되는 사이에 내 일상에 일어난 소소한 변화다. 사실 미처 치매라는 걸 몰랐을 뿐이지 이미 오래전부터 일어나고 있었던 일들이라 조금 더 신경 쓰는 강도가 높아졌을 뿐 아주 새롭게 생겨난 일은 실상 없는 편이다. 그래 사실은 늘 이래왔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살 거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사는 게 평범한 일이라 여겼던 내 생각이 조금 달라진 것이 아마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물론, 지금도 치매가 아주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특별히 더 불행하다던가, 특별히 더 불쌍하고 딱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누구나 겪게 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불행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 생각이 달라진 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비극이지만 내가 남들보다 조금 일찍 이런 경험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건 완전 유튜브 콘텐츠 각이다! 라고 외치지는 않았고 - 비슷한 생각을 하기는 했다. - 뭐랄까, 기록을 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남들보다 조금 일찍 이런 일을 겪게 되어서 그만큼 많이 실패하고 실수하고 어리석은 판단을 많이 해봤기에 성공 경험은 없어도 실패 경험은 아주 많이 매우 빨리 쌓을 수 있었으니까. 언젠가 혹시 또 누군가 나와 같은 실패와 실수를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노총각의 이야기를 좀 기록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