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아트스페이스 「기억술 記憶術」 전시를 방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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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필요한 책이나 문구류를 구매하기 위해 광화문 교보 내의 핫트랙스를 방문한다.
살 것을 사고 나오는 길에는 교보문고 내에 작게 마련된 교보아트스페이스를 종종 들르곤 한다.
시간 내서 전시까지 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비록 소규모긴 하나 이렇게 접근성에 비해 좋은 작품들을 꽤 만날 수 있는 공간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방문했을 때 열린 오픈된 전시는 「기억술 記憶術」. 우리는 빠른 속도로 지나쳐가는 세상에서 참 많은 것들을 잊고 산다. 굳이 잊지 않아도 자연스레 잊혀가는 기억, 감정, 관계, 사건 등이 무수하다.
「기억술 記憶術」은 잊어버린, 아니 잊혀간 기억들을 기술할 때 술자를 붙여 방법론적으로 기억해보는 과정에 대한 전시다.
그중에서도 내가 눈이 갔던 건 권순영 작가님의 작품들. 「기억술 記憶術」 전시의 두 작가 중 정재호 작가님이 기억의 순간을 스케치했다면, 권순영 작가님의 그림은 지나간 기간 동안의 감정을 그려낸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림 속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구멍에선 물이 흐른다. 그것은 굉장히 섹슈얼할 수도 있고, 굉장히 감정적일 수도 있는 감정들의 응결체다.
지나간 시간과 그 시간 속 만난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분명히 느꼈던, 하지만 스스로 회피하고 소외시켰을지 모르는, 의식적으로 잊으려 노력했던 감정들을 그림 속 대상들은 전신으로 흘린다.
아마 시간을 두고 겪었던 감정들을 한 순간에 모두 응축해 다시 느껴야 한다면 우리도 그림 속 대상들의 모습을 했으리라.
또한 그 대상들은 하나 같이 웃고 있지만 안은 비었다. 눈이 비었고, 속이 비었다. 과거의 기억들을 되돌려 생각하면 지금은 허탈한 웃음만 남을지 모르지만 그 웃음은 꽉 찬 웃음은 아닐 것이다. 아니 어쩌면 웃어야만 했던 그 과거의 순간의 반영일지도.
그뿐인가. 그림 속 객체들엔 하나 같이 온전한 외형이 부재한다. 모두 어딘가 끊기거나 단절되어 있다.
불완전하고 배제된 부분들은 매 순간 단편의 감정들을 겪고 흘려보내고 견디고 다시 맞으며 결코 완결형으로 완성될 수 없는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나는 아마 이 날 핫트랙스에서 꽤 필요한 무언가를 가득 산 뒤 집으로 가던 길에 아트스페이스를 방문했을 것이다.
손에 짐이 꽤 많았음에도 불구, 권순영 작가님의 그림들을 한참을 골똘히 보던 기억이 난다. 내 지난 기억들을 그려낸다면 나는 어떻게 그릴까. 이 그림들과 어떤 것이 비슷하고 어떤 것이 다를까 하며.
한 번 상상해보라. 당신은 당신의 과거를 기억해내어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한다면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
더듬더듬 내가 지나쳐 온 길을 기억을 되돌려 지도를 그리듯, 어떤 데생을 하고 어떤 구도를 잡아 그려낼 것인가.
시간이 난다면 오늘이라도 광화문을 지나가다 잠시 들려 관람하기를 조심스레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