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힘들수록 글을 쓰자

쓰면 살아진다

by 문이

삶을 살다 보면, 예고 없이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크게 힘든 일이 아니라도 이유 없이 허전하고, 누군가의 소소한 말 한마디에 괜히 기분이 가라앉는다. 해야 할 일은 쌓여 있는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도 있다. 특별히 나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마음 한구석이 쓸쓸하고 가라앉는 날들.


그럴 때마다 나는 글을 썼다.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었던 마음, 말로 꺼내면 눈물부터 날 것 같은 감정들을 조용히 단어로 옮겨 적었다. 처음부터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그저 복잡한 마음의 원인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메모장에 몇 줄 끄적이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그 몇 줄이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나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었다. ‘불안하다’는 감정 뒤에는 ‘두려움’이 있었고, ‘답답하다’는 말 아래에는 ‘미안함’이 숨어 있었다. 글을 쓰면서 그런 감정들에게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름을 붙인 감정은 이전보다 덜 막막하게 느껴졌다. 글은 감정을 해소하는 도구가 아니라, 감정을 이해하게 해주는 조용한 안내자였다.


한 번은 시어머니와의 통화에서 마음이 울컥했던 일이 있었다. 치매 초기 증상이 있는 어머니는 자주 약 드시는 것을 잊었다. “방금 먹었다”고 하시지만 나중에 확인해 보면 약통은 그대로일 때가 많았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넘겼지만, 같은 일이 반복되자 짜증이 나서 결국 목소리가 높아졌다. 전화를 끊고 나서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졌다.

그날 밤, 나는 그 통화의 전후를 글로 옮겨 적었다. 내가 느꼈던 감정, 그 순간의 내 반응, 어머니의 입장이 되었을 때의 마음까지 함께 썼다. 그리고 내 안에 쌓여 있던 피로감까지도 조용히 적어 내려갔다. 글을 다 쓰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왜 그 순간에 화를 냈는지, 어머니를 더 잘 보살피기 위해 내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를 천천히 돌아볼 수 있었다. 작은 글 한 편이, 그날의 나를 다독여준 셈이다.


누군가에게 감정을 털어놓는 건 때로 부담이 된다. 하지만 글은 판단하지 않고 기다려준다. 마음이 준비될 때까지, 내가 꺼낼 수 있을 때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그래서 글을 쓰는 시간은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고, 흩어질 듯한 감정을 단단히 묶어두는 시간이기도 하다.


김애리 작가의 책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에 이런 문장이 있다.

“누구에게도 터놓을 수 없는 아픔이 있다면 평생 절대 비밀을 고수할 사람 — 자기 자신 — 에게 털어놓아 보라. 쓰면 살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삶이 특별히 고통스럽지 않더라도, 소소한 불편함이 누적되면 감정은 뿌리부터 흔들린다. 그럴 때 글쓰기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된다. 생각을 붙잡고 감정을 가라앉히는 힘. 특별한 문장이 아니어도 괜찮다. 지금 나의 감정, 지금 나의 생각, 지금 나의 진심을 담은 한 편의 글이, 나를 내일로 이끌어줄 수 있다.


오늘 하루 마음이 복잡했다면, 너무 길게 쓰려 애쓰지 않아도 좋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나에게 말하듯 한 문장을 적어보자. 그 글이 당신을 위로하고, 당신의 내일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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