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위대한 예술가
맑은 날 아침, 창밖에서 '피리릭' 노래하는 새소리는 계곡이나 시냇물의 물소리와 닮아 있습니다. 잠든 나의 뇌를 깨어나게 하는 청량한 재잘거림에 나는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합니다. 자연에서 얻은 선물들로 간단히 배를 채우고 여유를 가지고 출근길을 나섭니다.
어느 아파트 단지의 사잇길을 걷는데 눈에 띄는 것이 있어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습니다.
이 사진들은 무엇으로 보이시나요?
네, 맞습니다. 여름을 더 여름답게 해주는 능소화, 그것들의 뿌리였습니다.
기둥을 타고 오르며 자란 덩굴과 뿌리의 자취가 벗겨진 페인트를 만나 한 폭의 추상화를 그려 놓았습니다. 빛바랜 노랑, 주황, 회색 바탕에 검은 선들이 번져나간 모습이 어느 화가의 붓놀림 같기도 하고, 시간의 결을 따라 남겨진 삶의 흔적 같기도 합니다.
그림자처럼 번진 뿌리의 자국은 기둥을 붙잡고 오르려는 강한 생명력을 연상케 합니다.
뿌리내리는 고통의 흔적,
허공에 떠 있는 뿌리는 발 디딜 곳을 찾아 몸부림을 칩니다.
이렇듯 자연은 말하지 않고 어느 화가 못지않게 시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많은 이미지와 상상을 낳게 합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인위적인 설계도 없이 자연 그대로의 생생함을 남깁니다.
능소화는 여름이 되면 화려하게 피어나지만, 그 아래 우리가 미쳐 보지 못한 뿌리의 노력과 흔적을 이렇게 조용히 남겨 저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너도 하루하루 마음먹은 대로 뿌리내리기를 하다 보면 이렇게 예쁜 꽃을 피울 날이 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