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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철쭉

by 문이

자주 지나치는 어느 아파트 화단에 어느 날 분홍색 철쭉 두세 송이가 피어있었다. 철쭉은 봄부터 여름까지 지천으로 피어있는 흔한 꽃이라 늘 곁에 있는 식구처럼 귀함을 몰랐다.

그런데 지금은 11월이지 않은가. 모든 꽃들이 스러진 자리에 붉디붉은 열매가 자신을 한껏 드러내고, 화사한 단풍잎들이 정신을 혼미케 하는 계절. 그 사이에서 어리둥절 뒤늦게 또 한 번 피어보겠다고 멋쩍게 얼굴을 내민 녀석들. 그리고 몇 송이가 더 피어나 눈길을 끌었다.


100세 인생이 보통인 세상으로 변했고, 계절이 혼란스러워졌으니 너도 변화에 맞추려는 움직임일까. 오십에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누군가를 보는 듯해서, 차가운 날씨에 얇은 연분홍 옷이 추울까 봐, 그 작고 여린 몸짓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누구도 너에게 관심 갖지 않겠지만, 너의 수고로움은 헛되지 않다. 가을의 신세계를 구경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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