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거장 사랑방

by 문이


기온이 낮은 아침, 버스를 기다린다. 등받이가 없는 긴 의자가 우유빛깔을 하고서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전기장치가 되어있는지 온기로 엉덩이를 감싸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밥 한 숟갈 들어간 듯 이 도시의 친절함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잠시 후, 빨간 티셔츠 위에 검은색 조끼를 입은 한 아주머니가 장바구니 달린 카트를 끌고 와서 앉았다. 곁눈질로 보니 염색을 했는지 머리카락이 유난히 검다. 나를 살짝 등지고 굳은 표정으로 버스가 오는 방향만을 주시하고 있다. 나는 책을 보다가 문득 추위 속 따뜻함에 약간 감동이 되었고,
약간 지루해져 아주머니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붙일까 말까 망설이다가 내가 먼저 입을 떼었다.

"여기 따뜻하게 잘해 놨네요."
아주머니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반가운 듯 말을 받는다. 화장을 해서 하얀 피부에 둥그스름하고 약간 통통한 볼이 무뚝뚝한 인상을 덮는다.

"서울에 가면 사방을 막아놔서 더 따뜻해요. 주말은 안 틀어 주는지 차갑더구먼 오늘은 틀어 주네. 아, 그때는 고장이 났나 보네."

"장 보러 가시나 봐요."

"예, 여기 근처에 장이 없어서 중동시장까지 가야 해요. 근처에 하나 있으면 딱 좋겠는데."

잠깐동안 장 보는 얘기를 나누던 중, 좀 더 나이 든 아주머니가 보라색 스웨터를 입고 옆에 와 서있다. 나는 가운데 공간을 만들려고 자리를 비켜주며 앉으라고 했고, 그녀가 따뜻하냐고 물으며 앉았다. 난 장갑을 꼈는데도 손이 시러워 허벅지 밑에 손을 넣고 온기를 느끼고 있었다.

"여기 이렇게 손 넣어 보세요. 따뜻해요." 아주머니는 손을 넣는다.

"여기 이렇게 나란히 손 넣고 앉아 있으니 옛날 온돌방 아랫목에 앉아 있는 것 같죠. 하하."
나의 멋쩍은 웃음에 보라색 옷 입은 아주머니가 묻는다.

"버스 기다린 지 한참 됐어요?"

그 말에 대한 대답을 시작으로 빨간 옷 입은 아주머니는 지난 자신의 기억들을 잘도 끄집어내며 버스 얘기의 물꼬를 트셨다.

예전에 버스를 탔는데 그 버스 기사가 유턴하려는 여자와 차를 박아서 엄청난 욕을 쏟아냈다고 한다. 개××, ㅆ×× 하는 엄청난 욕 세례에 그 여성 운전자는 얼굴을 들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단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자기가 탄 버스 기사가 운전하며 가는 내내 전화 통화를 해서 엄청 불안했다고 한다. 급기야 어떤 아주머니 승객이 그 기사의 모습을 동영상 촬영을 하고 내렸고, 그 후 차에 있던 아주머니가 기사에게 저분이 동영상을 찍었다고 알려줬단다. 그 기사는 웃으면서 오히려 "잘 됐네. 안 그래도 때려치우려고 했는데." 했단다.

세 번째로는 버스가 잠시 멈췄을 때, 기사가 일어서서 뒷문에 이상이 있어서 손보려고 온 사이 차가 혼자서 전진을 했단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한 아주머니가 버스가 간다고 소리쳐서 기사가 허둥지둥 운전대를 잡았던 일이 있었단다.
아주머니의 다양한 체험에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버스가 왔다.
버스 소재 하나로 저렇게 많은 경험들을 기억했다가 연달아 쏟아낼 수 있다니, 슬쩍 감탄이 새어 나왔다.

따뜻한 의자는 낯선 타인들을 하나로 연결해 주며 풍요로운 순간으로 다가오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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