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손더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서평, 안톤 체호프 <마차에서>

by 문이



이팝나무 소설클럽 1기에서 인생 네 컷을 써 본 후, 소설 공부를 위해 김정아 작가님이 추천한 책이다. 첫 시간에는 이 책. 조지 손더스의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중 첫 번째 단편인 체호프의 '마차에서' 분석 파트만 다룬다.


소설을 쓴다는 것,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조지 손더스는 안톤 체호프의 단편 <마차에서>를 현미경 아래 올려두고 낱낱이 파헤쳐 분석한다.

이 책의 첫 장을 덮을 때쯤 우리는 깨닫게 된다. 좋은 소설이란 작가가 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켜 감흥을 준다는 것을. 현실에서 새로운 상황으로 에너지가 전이된다는 것을.

1. 무자비한 효율이 빚어낸 서사의 밀도

손더스는 체호프의 문장들이 가진 '무자비한 효율'에 주목한다.
소설 속 읍내가 단순히 배경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비참함을 고조시키고 다음 행동을 유발하는 ‘목적’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문장은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이야기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원칙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의 단 한 구절도 우연이 아님을 신뢰하게 한다.

2. 에너지의 축적과 전이: 왜 '오늘'인가?

왜 작가는 마리야의 13년 교사 생활 중 하필 ‘오늘’을 택했는가? 손더스는 이를 ‘에너지의 전이’로 설명한다. 13년간 쌓인 무채색의 고통과 외로움이라는 에너지가, 기차 창밖에서 어머니를 닮은 여인을 마주하는 찰나의 순간에 폭발적인 환희로 바뀐다.

인상적인 장면은 작가가 독자를 주인공 마리야의 내면 아주 가까이로 끌어당기는 방식이다.
체호프는 마리야의 비참함을 집요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의 마음속에 연민을 쌓고, 마지막 순간 그 에너지를 마리야의 환희와 합치시킨다.
독자는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니라, 마차가 덜컹거리는 진흙탕 길 위에서 그녀와 함께 울고 웃는 당사자가 된다.

3. 소설은 답을 내놓지 않는다, 다만 정리할 뿐이다

손더스는 소설이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도구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체호프는 마리야를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시절로 잠시 환희 속에 두었다가 다시 차가운 현실의 마차로 돌려보낸다. 소설은 끝났지만 마리야의 고단한 삶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말하려는 것은, 세상에는 달랠 수 없는 외로움이 존재하며, 그 외로움을 견디게 하는 것은 거창한 구원이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찰나적인 기억의 복원이라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독자는 타인에 대한 확장된 공감을 경험한다.

총평

이 책의 <마차에서> 파트는 소설 창작론을 넘어 인간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손더스는 체호프의 소설 속의 무자비한 효율(잘 짜인 각본)이 독자를 인물의 심장 가장 가까운 곳으로 데려다주기 위한 작가의 다정한 설계였다고 알려준다.

일상의 뻘밭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이라는 서사가 어떻게 에너지를 축적하고 전이시키는지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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