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라는 각성제

by 문이

삶이 좀 버겁게 느껴질 때 있어요. 별일 아닌 말을 곱씹고, 괜히 욕심이 올라와 스스로를 괴롭히는 날, 주변 상황이 불안한 시간. 그럴 때 저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만약에 내가 3개월 뒤에 죽는다면?”

처음엔 좀 과한 생각 같기도 한데, 이걸 진짜처럼 떠올려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감사함이 올라옵니다. 그렇게까지 붙잡고 있던 것들이 힘을 잃어요. 꼭 가져야 할 것 같던 것도, 이해받지 못해 속상했던 일도, 주변 상황도 다 조금씩 가벼워집니다.

책에서 이런 내용을 접하곤 합니다. 삶이 끝나가는 사람에게는 소유나 명성 같은 것들이 다 의미 없어지고, 결국 ‘함께했던 시간’만 남는다고요. 그 문장을 보고 한동안 머물게 됩니다. 나는 지금 뭘 그렇게까지 애쓰며 쥐고 있나, 어떻게 살아야 될까.

우리는 늘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요. 그래서 더 가지려고 하고, 더 인정받으려고 애쓰고, 눈 앞의 것에만 매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끝이 있다고 생각하면 기준이 확 바뀝니다. 뭘 더 가질까보다, 뭘 굳이 붙잡고 있나를 보게 됩니다.

마음이 복잡할 때 이 생각을 꺼내보려해요. 일종의 ‘각성제’처럼요. 지칠 때 한 알씩 꺼내 먹으면, 지금 이 순간이, 주변의 것들이 모두 소중해지겠죠? 지나치던 햇살, 옆에 있는 사람, 작은 풀 꽃 하나, 불친절한 이웃까지도요.

삶이 힘들 때, 뭔가를 더 하려고 애쓰기보다 이렇게 한 번 생각의 방향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끝을 떠올려 보는 것. 의외로 그게, 지금을 더 잘 살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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