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새로워지는 나

서평,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by 문이


요즘 SNS를 보면 읽은 책을 탑처럼 쌓아 올린 사진이나 엄격한 루틴을 인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학습된 방식으로 살아야만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매일 '더 나은 나'를 꿈꾸며 지식을 쌓고 루틴을 지키려 애씁니다. 하지만 돈키호테가 기사도 이미지에 갇혀 눈앞의 풍차를 거인으로 보았듯이, 우리도 이와 닮아 있습니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훌륭해.", "작가라면 이런 루틴을 지켜야 해"라는 고정관념에 둘러싸여 오늘 처음 만나는 삶의 진면목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매일 책을 읽고, 달리기를 하고, 글을 쓰는 루틴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안전한 감옥이 되지 않으려면 이방인처럼 깨어있어야 합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우리의 일반적인 관념과 반복되는 일상에 새로운 관점을 던집니다. "생각은 항상 낡은 것이다." 우리가 지혜라고 믿었던 경험과 지식은 도리어 우리를 과거에 가두는 감옥일 뿐이라고 합니다. 진정한 창조는 치열한 계산(생각)이 아니라, 모든 생각이 멈춘 찰나인 직관에서 일어납니다. 아인슈타인이 바이올린을 켜며 고요히 있을 때 상대성 이론의 실마리를 얻었듯이, 자아를 내려놓고 흐름에 자신을 온전히 맡길 때 살아있는 문장이 태어납니다. '지식이라는 낡은 지도를 버릴 때 진짜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는 '지식은 전달될 수 있지만 지혜는 오직 스스로의 체험을 통해서만 완성된다'고 말합니다. 헤르만 헤세의 책 <싯다르타>가 떠올랐습니다. 관념에서 시작된 모든 가르침과 스승을 뒤로하고, 온전히 세속에 들어가 몸소 겪고서야, 마침내 흐르는 강물에서 온 세상을 발견했던 싯다르타. 우리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책을 읽습니다. 사실 책을 읽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차라리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고, 한 걸음이라도 더 걷는 게 진짜 살아있는 삶이 아닐까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전하려는 메세지, 두목처럼 책상 앞에서의 사유가 삶이라는 현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허한 관념의 유희에 그칠지 모릅니다.



그런면에서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이론이나 주장은 세상을 틀에 맞춰 해석하려 하지만, 소설은 삶의 모순과 비논리적인 순간들까지도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그려냅니다. 철학이 고통을 추상적으로 정의할 때, 소설은 인물의 거침없는 재현을 통해 삶의 진짜 얼굴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때로는 거창한 철학 서적보다 누군가의 진솔한 삶이 담긴 이야기 한 편이 우리 내면의 움직임을 일으키는 더 강력한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통찰은 현대 심리학이나 뇌과학이 다시 불교적 자각으로 회귀하고 있는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 '생각은 내가 아니다'라고 가르치는 메타인지의 원리나, 현재의 고통을 억지로 고치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해방이 온다는 수용의 자세는 이 책이 강조하는 자각과 통합니다.



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만이 아닙니다. 건강을 위해서라는 목적조차 내려놓고 발바닥에 닿는 지면의 감촉에 온전히 집중해 보는 것입니다. 춤을 출 때 발동작 하나에 신경쓰거나 잘 하려고 애쓰면 도리어 스텝이 꼬여버립니다. 몸을 흥에 맡길때 자연스럽게 표현이 됩니다.



내 안의 필터를 빼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이것이 크리슈나무르티가 말한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이자, 살아있는 진리를 만나는 방법입니다.



결국 우리가 여전히 책을 펼치는 이유는, 문장을 거울 삼아 내 안의 고정관념을 발견하기 위해서입니다. "내 지식이 나를 가두고 있었구나"라고 통렬하게 깨닫고, 그 즉시 마음의 습관이 변한다면 그것은 어떤 산책보다 격렬한 내적 행동이 됩니다. 정보 수집으로서의 독서가 아니라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독서. 그때 책은 우리를 가두는 벽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열린 창문이 됩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마주칠 이름 모를 들꽃이나 낯선 이의 인사가, 세상 그 어떤 두꺼운 지식과 이론보다 더 생생한 진리를 말해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식은 잠시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 살아 움직이는 나와 세상을 온전히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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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75f642bb-3651-11f1-ad6f-03d92ac4e05d.jpg?type=w1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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