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지난번 포스팅한 금숙 언니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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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농촌에서는 소가 큰 재산이었습니다. 소는 쟁기를 매달고 밭을 갈기도 했고, 수레를 매달고 짐을 운반하기도 했습니다. 또 어느 집 자녀의 대학 등록금 밑천이 되기도 했어요. 그래서 집집마다 소를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우고 보살폈습니다.
농사일이 바쁜 산골에서 소꼴 베기는 아이들 차지가 되곤 했습니다. 녹음이 짙어지는 여름이면 소의 먹이가 되는 풀들이 지천으로 자랍니다.
금숙의 아버지는 학교에서 돌아온 딸들에게 망태기를 던져주며 소꼴을 베오라고 시키곤 했다네요. 가는 새끼로 엮어 만든 망태기는 어린 자매들에게는 엄청 커 보였어요. 남자아이라면 지게를 가져갔을 것입니다.
"아부지가 숫돌에다 낫 잘 들게 갈아 놨은께 빨리 챙겨갖고 댕겨와라잉"
"우리는 허고헌날 무신 콩쥐 팔자란 말이냐!" 경숙은 넋두리를 합니다.
"긍께 말이여, 언니, 그나저나 오늘은 어디로 가볼 텐가?"
"저그 수두렁골로 가보자. 빨리 댕겨오믄 쪼께 놀 수 있것제잉"
금숙은 언니랑 수다를 떨며 풀을 벱니다.
"언니, 비암 조심혀"
"아따, 너나 손 안 비게 조심하드라고."
"아이고 어깨 아파 죽겠구마잉" 금숙이 죽는소리를 합니다.
"가시내야 엄살 그만 피고 싸게 싸게 해라잉"
"아직 멀었당가?"
망태기는 채워질 기미가 안 보입니다.
"아직이 머시여? 인자사 반 채웠구먼"
"이 시, 이것을 언제 다 채운다냐, 놀 시간도 없것어. 여따가 돌이라도 집어넣고 싶네잉"
금숙의 이 말에 언니 경숙은 눈이 번뜩입니다.
"그러까? 가운데다 넣고 우쪽에 풀로 덮으믄 아부지도 눈치 못 채것제?"
금숙과 경숙은 신이 나서 돌과 풀로 망태기를 채우고 집으로 향합니다.
"뭐시 고로코롬 무겁다고 낑낑대쌌냐?" 뒤에서 자꾸만 처지는 동생을 경숙이 나무랍니다.
"언니도 다 암시롱, 돌이 들었응께 무겁제."
집에 들어오자 아버지가 망태기를 받아듭니다. 그것들을 헛간 앞으로 가져가는데 생각보다 묵직합니다. 풀이 이렇게 무거우면 얼마나 담긴 건가 싶은 생각에 망태기를 뒤집어 흔듭니다. 풀과 돌이 쏟아져 나옵니다. 순간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이놈의 가시내들이 어디 아부지를 속여?"
"아부지 잘 못했구먼!"
"안 되겠다, 느그 둘 다 한 통 속으로 나를 속여 묵었은 게 한 번 똑같이 고생 혀 봐라." 하면서 아버지는 두 딸의 머리를 가져다 대고 머리카락을 같이 잡아 하나로 묶었습니다.
"느그는 그러고 같이 댕기믄서 벌 좀 받아라잉" 하고는 아버지는 자리를 뜹니다.
"하이고오 시상에 워쩌면 저렇코룸 정떨어지게 말헌당가, 아부지가 돼가꼬는" 경숙은 아버지가 얄밉습니다.
"언니, 잡아댕기지 말어, 아프다아."
"참말로 시끄러 죽겠네에, 쥐뒹이 조께 오므리고 있드라고."
언니는 애먼 동생에게 화를 냅니다.
자매들이야 어찌 되었든,
소는 풀이 영양가 높은 자연의 선물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서인지, 향긋한 풀 맛이 좋아서인지 커다란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우적우적 맛있게도 씹어 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