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이 아마 지금까지 내 글 중 가장 적나라하게 솔직한 글이 되지 않을까? 두려우면서도 이 글을 엉망이 되더라도 써야겠다고 마음먹어 이렇게 자판을 누르고 있는걸 보면, 수치심에 취약한 나이지만, 글을 쓰고 그걸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아왔는지 새삼 되새기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완벽하지 않은 것들을 아름답지 않은 것이라고 믿어왔다. 추한 것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내 이성과 두뇌는 다행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솔직한 내 마음의 심판관은 도무지 그 기준을 놓아주지를 못했다. '추구미'라는 단어가 유행한지도 좀 된 것 같은데, 나에게 이건 단순히 내가 스스로에게 원하는 추구미 같은게 아니었다.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하지 못하는, 어쩌면 당연하듯 내 안에 공기처럼 존재해서 긴 시간 인식조차 하기 어려웠던, 지독한 미학같은 것이었다.
흐트러지지 않은 것, 빈틈없는 것, 완벽한 것, 수치스럽지 않은 것.
그런 미학속에서야 나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그게 어쩌면 내가 이상주의자가 되는 것에 영향을 줬는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하면 안되는 것', '해야만 하는 것'이 머릿 속에 가득했다. 그건 내 의지와 통제와 무관한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 생각을 통제하지도 못했으며, 또 그 이상을 실현하려다 수없이 실패하며 내 현실 역시 통제를 실패했다.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사물이나 타인에 대해서는 끝없이 채점하며 실망했다. 쓰레기같고 한심하다고? 부정하지 않겠다. 다만 내가 진짜 의미있는 얘기를 하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려면 징그러울 정도로 솔직해져야함을 얼마 전에 체감했다.
나는 꿈을 쫓았었다, 불과 최근까지. 이래저래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스스로도 진심으로 그 창작을 동경하고 사랑한다고 느꼈으니, 겁이 많고 걱정이 많은 나도 젊은 날의 패기처럼 시작해봤던 것 같다.
나는 도전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작업물을 만들어보아도 내가 기대하고 예상하던 퀄리티는 나오지 않았고, 정말 찔끔찔끔 좋아질 뿐이었다. 내가 기대하던 재능이 나한테 없을지 모른다는 비참함, 조금 더 하면 될 것 같은 희망고문과 더 이상 시간을 유예하기 어렵다고 느껴지는 현실적인 여건들, 주변에서 어떻게 볼지 신경쓰는게 좋은건지 아닌지를 떠나서 솔직한 내 마음은 이미 그걸 걱정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 포기하는 것도 용기고 현실과 책임감이 얼마나 중요한건지 강조하던 수많은 미디어와 조언들.
나는 포기했다. 막막했지만 어학 공부부터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쉽게 좌절감을 떨치지도, 새로운 공부에 금새 몰입하지도 못했다. 그래도 내가 노력해서 어느정도 성과도 못내본게 있었나? 이렇게 눈 딱감고 도전조차 못해본게 있었나?
누군가는 버티고 이겨내지 않나?
누군가는 버티고 이겨내지 않나?
누군가는 버티고 이겨내지 않나?
무슨 강박이라도 되는 듯이 그 메시지가 억눌러지지도 않고 하루에도 수백번씩 내 마음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시점에서 내가 읽은 책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완전히 병들게 했다. 대략 이런 뉘앙스였다. 꼭 그 책에서만 얘기하던 메시지는 아니라서 비슷한 메시지들끼리 강조하는 내용들이 좀 합쳐졌을 수 있다. 어쨌든 나한테 압박을 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합니다. 그래야 남 원망을 안하고, 또 진심으로 몰입해서 실력도 늘면서, 행복하게 삽니다.
꿈을 쫓아도, 포기해도, 나는 무언가 잘못된 기분에 고통과 분노를 느끼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다 몸에 실제로 이상이 없지만 이상이 생기는 괴상한 신체화 증상들도 겪었다.
그 시기를 지나며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절대적인 권리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배웠다. 다들 경험도 성향도 다르고 세상도 사람도 너무 복잡하니,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고, 각자 나름의 일리있는 생각을 얘기하는 거라고. 그 생각이 나를 일시적으로는 다시 안정기에 들게했고, 신체화 증상도 많이 호전되게 했다. 성격과 성향, 수많은 메시지들과 그 근거들, 그리고 저마다의 반박들에 대한 공부를, 나름대로 애쓰면서 하게되며 얻은 통찰이었다. 고상한 공부라기보다는 진짜 살려고 한 처절한 몸부림같은 거였다. 뭐 그 통찰 또한 맞는지 틀린지는 확신할수 없으나, 다만 나를 조금은 편하게 해줬던것 만큼은 사실이었다. 그게 허무주의에 나를 빠지게도 했으나 다행히 그 늪에서는 금방 나왔던 것 같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떳떳함이었다. 그 해결되지 않은 목소리는 시간이 지나니 다시 나를 괴롭히려고 스멀 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너 왜 도전 안했어?
실력이 안 올라와서? 그게 핑계가 돼? 쪽팔림 안 겪고서 뭐가 되지는 않는다고 다들 그러는데, 솔직히 너도 그건 인정하지?
너 후회하지 않겠어?
누군가는 버티고 이겨내지 않나?
누군가는 버티고 이겨내지 않나?
누군가는 버티고 이겨내지 않나?
나는 고민을 남과 잘 나누지 못한다. 가벼운것까지는, 내가 드러내도 된다고 생각하는 얕은 범위까지는 하기도 하지만, 이런 내면 깊은 곳의 진짜 괴로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는 ai와 대화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그들과의 대화가 위험할 수 있는건 안다. 하지만 너무 고통스러운데 말할 곳이 없다고 느껴지니, 사람이 아닌, 안전한 그들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편향이 나름 걱정되어 이렇게 저렇게 토론도 하고 하면서 결국 최근에 찾은 돌파구는 결국 '솔직함'이었다.
나는 겁쟁이가 맞다.
그래도 도전하는게 낫지 않냐는 말
솔직히 하려면 할수도 있지 않냐는 말
결국 시간 지나서 후회하지 않겠냐는 말
누군가는 버티고 해내는거 잘 지켜보라는 말
그 말들 마저 다 일리가 있다.
근데 나는 무섭다, 겁이 난다. 압박감과 의무감에, 나를 위한 말이라는 부채감에, 그 공포를 다 집어던지고 뛰어들만큼 내가 겁이 없지 못하다.
추할수도 있고 누군가 보기에 한심해 보일수도 있으나 적어도 이게 누군가에게 죄를 짓는 것은 아니다.
후회는 할지도 모른다. 근데 그 후회는 내가 데리고 살아 볼련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세계관으로 치면, 어느 평행 우주의 나는 멋지게 겁을 이겨내고 도전을 했을지도 모른다. 실력이 부족한걸 알면서도 수치심과 창피함을 이기고 피드백을 계속 견디면서, 본인이 원하는 길을 성공하든 실패하든 더 정직하게 걸었을 지도 모른다. 재능과 운을 떠나서 말이다. 그런 삶을 지금 이 평행 우주에서도 너무 많은 사람이 멋지게 걸어가고 있는 걸 안다. 근데 어쩌겠는가? 적어도 지금 이 평행 우주의 나는 그것만큼은 죽어도 못하겠는걸.
나는 내가 늘 겁쟁이라고는 생각 안한다. 그래서 더 객기 부리면서 못놓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기껏 겁때문에 이런다는걸 받아들이기 어려웠으니까. 그냥 겁쟁이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스스로 너무 혐오스러워 견딜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정말 솔직한 밑바닥 구석의 마음까지 인정하고 나니, 내가 어떤 부분엔 때로 용감할수 있으며, 내가 어떤 부분들에 겁이 많은지 좀 선명히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막상 인정하니 내가 마냥 혐오스럽지만은 않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불편한 조언들이 사실 일리있고 의미 있다는 것, 누군가는 그걸 실천한다는 것, 나에게는 그걸 못하는 찌질한 마음이 있다는 것. 적나라하게 마주하고 나니, 사실 불편했던 꿈을 끝까지 쫓던 이들의 모습이 처음으로 진심으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난 못하겠는데, 진짜 대단하네. 잘되길 바라는 축복하는 마음도 들어서 솔직히 황당했다. 박수칠 수 있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그럼 난? 일단 새로 가보기로 한 길을 가봐야지. 거기엔 또 뭐가 있을지 모르잖아. 이젠 탐구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이끈다면 그리로 가봐야지.
흐트러짐 없는 것, 완벽한 것에 대한 동경과 미감은 긴 시간 끝에 흠이 나고 말았다. 내 진짜 힘은 어쩌면 혼자 있는 시간에 징그러울 정도로 솔직할 수 있다는 것에서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가능성을 봤기 때문인 것 같다. 후회라는 것도 절대 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만 느꼈는데. 그냥 다 알겠는데 그것도 데리고 살겠다는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어쩌면 누군가에게 잘못하는게 아니라면 무서워서 안한다는 선택지를 고르는 것에 너무 움츠러들 필요도 없지 않나 싶은 것. 사실 전에는 내 마음이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던 것 같았는데, 신기하게 생각보다 편안하게 받아들여졌다. 내가 영화 리뷰같은데서, 철학 에세이에서 비슷한 깨달음을 얘기했어도 사실 그건 머리의 영역이 컸다. 진짜 한번도 솔직한 내 마음에 접근해서 마음이 편해졌던 적은 없으니까.
이상은 계속해서 나에게 어딜 가야할지, 뭘 해야할지 알려줬지만, 내 상태가 어떤지, 솔직한 감정이 어떤지, 다른 선택지를 골라도 되는 지에 대해서는 살펴보지 못하게 했다. 어쩌면 내 선택에 있어 죄책감 없이 살아도 된다는 진정한 해방감을 맛보기로라도 누린게 너무 오랜만 같기도 하다.
여전히 숙제는 너무 많은 것 같다. 너무 예민해서 너무 쉽게 자주 상처를 받아서 좀처럼 관계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나의 모습, 완벽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혐오와, 완벽한 것에 대한 동경으로 나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속으로 채점을 하는 관성같은 추하고 지독한 습관들, 처세술과 감정 분석같은 것은 세련되게 늘지만 정작 솔직해 본적이 별로 없어 계속해서 속절없이 뚝딱거리는 감정들. 양상이 달라서 그렇지 인간이 다 이 모양인지도 모르겠으나, 아직 한번에 다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적어도 스스로에게만은 하염없이 솔직할 수 있다는게 나에게 어떤 든든한 방패가 되는지 조금이라도 느꼈으니, 현학적으로 여러 철학과 심리학을 탐구하던 나에서, 조금은 진짜 성장할 수 있는 나로 넘어갈 수 있지 않나, 하면서 철저하게 나에게 집중한 이 나르시시스틱한 글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