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하우스키핑 일을 하며 지옥과 천국을 맛보다.
언니와 떠났던 유럽 배낭여행을 통해 나도 영어를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었던 것이기에 난 그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레스토랑 일을 그만두고 알파벳만 알면 할 수 있는 영어 관련 알바를 시작했다.
그 일을 선택한 이유는 그냥 무턱대고 영어라는 것에 어떻게든 가까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어 관련 알바를 한참 하고 넉넉지 않은 부모님을 졸라 캐나다 단기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다.
하지만 한 클래스에 50% 이상이 한국 학생 이었던 곳에서는 영어실력이 생각보다 빠르게 늘지 않았고 결국엔 college에 들어가게 되었다.
부모님께서 첫 학기 등록금만 도와주시기로 약속하였기에 다음 학기 등록금 마련을 위해 난 항상 알바를 찾고 있었다.
그때 마침 집주인아저씨 여자 친구의 소개로 호텔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본 후 호텔 하우스키핑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때 나의 영어 실력이 신생아 옹알이 수준 이었다는 것이다.
호텔 방을 청소하는 하우스 키핑 일이니 영어로 말할 일이 별로 없겠지 하고 스스로를 달래며 첫날 호텔로 갔다.
그런데 아뿔싸.
프런트 데스크와 하우스키퍼들이 서로 무전기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호텔 일을 시작하고 첫 6개월 정도는 알바 하러 가는 길이 지옥으로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들의 말을 못 알아들어서 하루에 몇 번이고 프론 데스크에 가서 금방 뭐라고 했는지 직접 얼굴을 보고 물어봐야 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자존감은 한없이 추락했던 것 같다.
내가 일했던 호텔은 나름 부자동네에 위치한 부티크 호텔이었다.
프런트 데스크 포지션에는 모두 백인 친구들이 그리고 뒤에서 일하는 하우스키핑 등의 포지션에는 대부분이 필리핀 이민자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50-60대 아줌마 들이였다.
출근 첫날 매니저가 회색빛의 유니폼 한 벌을 건네주며 선임 하우스키핑 아주머니 한 분을 따라다니며 배우라고 나에게 말했다.
20대 어린 마음에 그 회색 유니폼이 너무 입기 싫었던 기억이 난다.
그냥 그 유니폼을 입는 순간 내가 마이너리그에 속하는 기분이었다.
며칠간의 트레이닝 후 난 주중에는 저녁 6시에 출근해서 밤 11시에 끝나는 저녁 조로 배정을 받았다.
학교가 끝나면 곧장 호텔로 와야 하는 일정이었다.
주말에는 다른 하우스키퍼 아주머니들과 같이 새벽 6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쯤 퇴근하는 스케줄로 일했다.
그때 일하면서 느낀 거지만 청소가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그리고 그 일을 몇십 년씩 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정말 대단해 보였던 것 같다.
내가 주로 일했던 주중에 저녁 조는 나와 다른 하우스키퍼 1명, 이렇게 총 2명이서 오전에 완료되지 못한 몇 개의 방청소와 함께 숙박 객들의 요청사항들을 해결해 주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얼음을 보내달라는 객실, 베개를 바꿔달라는 손님 및 알레르기 약을 구해 달라는 손님까지 그 요청은 정말 다양했다.
한 번은 호텔 복도에서 501호에 머물던 손님과 마주쳤다.
그 객실의 손님은 다급한 목소리로 본인의 강아지가 연결된 발코니를 통해 옆방인 502호로 넘어가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502호로 가서 본인의 강아지를 빨리 꺼내 달라고 나에게 부탁했다.
난 그때 긴급구조 담당자의 마음으로 이 아이를 어서 꺼내서 주인에게 돌려줘야겠다 싶어 No problem!이라고 크게 외쳤다.
옆방에 양해를 구하고 강아지를 꺼내주는 일이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나 인생에 쉬운 일이 없는 법!
이 간단해 보이는 일에도 장애물이 있었다.
옆방인 502호 문에 Do not disturb!라는 방해금지 싸인이 걸려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싸인이 문 앞에 걸려있으면 말 그대로 그 방은 방해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강아지를 구해야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그리고 금방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은 강아지 주인의 얼굴 표정에 이끌려 그만 호텔 원칙을 망각하고 502호 문을 두드리고야 말았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거의 20분 정도를 502호 문밖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아무도 없는 것 같으니 들어가서 강아지만 얼른 데려올까?’라는 생각을 한 5만 번은 한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에잇 모르겠다!’ 하고는 502호의 문을 열고야 말았다.
다행히도 방에는 아무도 없었고 발코니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잘 놀고 있는 빠마를 하고 미용실에서 금방 나온듯한 하얀 뽀글이 머리의 강아지를 얼른 집어 들고 쏜살같이 나왔다.
그리고 이 뽀글이 머리 강아지를 구조했다는 뿌듯함에 나의 어깨 뽕이 하늘을 찌르는 순간 그날 같이 일하던 꼰대 직원 아저씨에게 딱 걸리고 만 것이다.
방해금지 싸인이 있는 방을 허락 없이 함부로 들어간 나는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났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그곳에서 일하며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다.
전용 마사지 사를 데려온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도 볼 수 있었고, 이름만 말하면 다 아는 레전드 급 가수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지만 역시나 내게 제일 기억에 남는 부분은 가장 힘들었던 경험이다.
앞서 말했듯이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무전기로 했는데 그때마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매일 직원 출입문을 열기 싫을 정도로 나를 힘들게 했던 무전기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이 나의 영어 실력을 단시간에 급속도로 성장시켰다.
다른 외국인 친구들과 비교해 정말 빠른 시간 안에 영어 회화가 늘었으며 더불어 캐나다에서의 사회생활 스킬도 나날이 늘었던 것 같다.
호텔에서 일하며 배운 영어는 나에게 영어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때 그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은 큰 장벽을 넘으려면 우선 그 장벽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선 나의 시간과 노력을 통하여 그 장벽을 두드려 보기도 하고,
올라가는 방법을 고민해 보기도 하고,
한참을 올라갔다 떨어져 다쳐 보기도 하며 장벽 오르기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서툴지만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포기하지 않고 오르는 것이다.
그때 내가 마주했던 장벽 너머에는 꽤나 멋진 풍경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했던 내가 2년 후에는 새로 오픈하는 같은 계열의 호텔에 매니저로 가게 된 것이다.
여러분에게도 지금 눈앞에 큰 장벽이 있다면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오르기를 시작하길 바란다.
그 장벽 너머엔 너무나 멋진 풍경이 있을 수도 있고 혹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질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과정과 결과를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가짐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