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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Jan 10. 2021

안 하던 짓을 해야 하는 이유

눈 온 다음 날

비는 눅눅해서 싫다. 눈은 질퍽해서 싫다. 고등학생 때도 오로지 날씨 때문에 학교를 두 번이나 결석했다. 세 번째 결석할 뻔했던 날은 엄마에게 쫓겨나다시피 학교에 갔다.      


그 후로도 비나 눈이 오는 날은 최선을 다해 나가지 않았다. 신혼 때 눈이 온다며 순정만화의 눈빛을 보내는 남편을 끌어다가 창가에 앉혔다.


“여기서 봐. 얼마나 예쁜지”     


어제 저녁, 서울에 기록적인 폭설이 왔다. 아이들이 일찍 알았다면 나가자고 성화였겠지만 팬티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최신식 패션쇼라며 지들끼리 히히덕거리느라 닫힌 커튼 밖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다. 커튼이 이렇게 예뻐 보이는 날도 있다.      


폭설의 여파인지 오늘도 종일 영하 10도 아래였다. 성실하게 추워지는 하루 동안 성실하게 먹어댔다. 저녁 쯤 되니 위장이 나를 욕하는 것 같았다.     


“양심이 있으면
나 좀 도와주지?
눈 그친 지가 언젠데
    눈 핑계로 안 나갈 거야?”     


요사이 매일 운동한 흔적이 내 몸 어딘가에 남았는지 위장의 불평에 좀 움직이고 싶었다. 눈이 질퍽할 것 같아서 늘 달리던 한강 쪽으로는 못가고 지하철 역 한 정거장만 걸어야겠다 싶었다. 올 때는 지하철 타고 오면 되니까 교통카드를 챙겼다.      


워낙 추워서인지 질퍽 말고 뽀드득 눈이다. 뽀드득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뛰듯이 걸어 2km 떨어진 지하철역까지 왔다. 역사로 들어가 주머니를 뒤졌는데 카드지갑이 없다? 아니 왜?      


추위 탓에 핸드폰은 방전됐다. 밖으로 나와 터덜터덜 걷는데 뒤에서 누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좁은 어깨, 160이 간신히 넘는 키, 시장표 배낭, 등산화 비슷한 운동화, 남색 패딩. 얼핏 보면 꼭 우리 아빠였다. 그가 나를 지나쳐갔다. 동시에 만화 [달려라 하니]에서 하니가 엄마에게 뛰어가는 마음처럼 나도 갑자기 하니가 됐다.


저 사람을 놓치지 않겠어!       


외길이었고 그 사람은 평소에 내가 뛰던 것보다 아주 약간 빨랐다. 페이스메이커가 이런 거구나. 혼자였으면 절대 못 뛰었을 거리를 10분 만에 돌파했다. 나도 모르게 그의 옆으로 가서 “선생님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했다.       

 “네? 누구세요? 뭐가 고마워요?”     

마스크와 모자 때문에 정확히 보이진 않았지만 눈빛과 목소리로는 50-60대 중년 남자였다.  얼른 부연설명을 했다.      


“지하철 교통카드를 안 갖고 나와서 집에 어떻게 가나, 하고 있었거든요. 선생님이 뛰시길래 얼떨결에 따라 뛰어서 금방 왔어요. 그래서 고마웠어요”     


“허허, 내 뒤에서 뛰던 사람이 아가씨였군요. 추운데 고생했어요”     


(흐억, 아가씨는 아니고 아가씨를 키웁니다만) “선생님도요. 고맙습니다.”     


그와 헤어져 집으로 오는 길, 500미터만 가면 집인데 그제서야 시동이 걸린 몸은 2km를 더 뛰고서야 집에 들어왔다.      




정여울 작가는 마흔이란 우리가 공들여온 모든 시간의 흔적이 응축되어 환하게 빛을 발하는 시기라고 했다. 그 정의는 오늘의 나에게서 정확하게 빗겨 나갔다. 눈 쌓인 길을 걷는 시간 따위 그전까지 없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능청스레 고맙다고 인사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정확하게 빗겨나갔으나 나의 수용범위를 넓히는 일이었으니 기쁜 빗겨나감이라고 할까.     


쩡쩡 어는 추위가 길을 적막으로 감싸는 시간인데 나는 늠름해지고 있었다. 이 추위를 뚫고 달렸다는 자신감이 늠름했다. 황당할지도 모를 감사 인사에 환해진 그의 눈빛과 웃음 묻은 목소리가 얼어붙은 손끝을 녹였다. 그 역시 나의 늠름함을 도왔다.      


‘안 하던 짓’을 하는 바람에 눈 오고 비오는 날 좀 더 너그러운 마음이 될 수 있겠다. 고마운 사람이 있을 때 얼른 표현해서 그 시간을 뜻밖의 온기로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 마흔은 지금까지의 흔적이 응축되는 시간이 아니라 지금까지 ‘안하던 짓’을 해서 나 아닌 방식으로도 살 가능성을 보이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물론 교통카드는 챙기면서! (집에 와서 보니 카드 지갑은 내가 두꺼운 양말을 꺼냈던 그 서랍에 정확하게 있었다.)          

카드를 놓고 나온 줄도 몰랐던 셀피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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