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음감 Jan 12. 2021

기욤뮈소님께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을 읽고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 사는 당신의 팬 최은영 이라고 합니다. 당신은 소설 속에서 작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팬에게 ‘푸아그라가 맛있다고 그 거위를 만나고 싶어 하나요?’하며 독설을 날리셨죠. 부디 그 대사는 캐릭터를 살리기 위한 묘사에 불과하기를.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은 작가의 삶을 소설로 들여다보면 괜찮은 소재가 나오지 않을까 해서 고른 책이에요. 물론 읽기 시작 후엔 글이고 뭐고 이야기를 따라가느라 정신없었지만요.      


이 소설을 읽으며 셜록홈즈 OST ‘Discombobulate(방해하다)’가 떠올랐어요. 이야기의 배경인 보몽 섬이 처음에 별일 없듯 음악도 처음 12마디는 챔발로 솔로로 별일 없거든요. 딱 20초 지나서 베이스, 튜바 등의 크고 묵직한 악기들이 ‘쾅’ 떨어져요. 당신 이야기의 초반부터 시체가 ‘쾅’ 박혀있는 장면과 비슷하지요.    

  

혹시 여기까지 읽고 이 음악을 찾아보셨나요? 맞아요. 멜로디가 그리 진지하진 않아요. 이 소설이 당신의 다른 소설 <센트럴 파크>처럼 오로지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으로만 쓰였다면 셜록OST는 분명 안 어울려요. 그런데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은 라파엘의 1인칭 시점으로 쓰는 부분도 있잖아요. 소설 속에서 또 소설로 들어가는 구조가 재미있으니 셜록OST같은 해학을 담은 음악이 더 잘 어울리더라고요.      

셜록OST의 작곡가는 한스짐머입니다. D minor를 좋아하지요. ‘레’를 중심으로 하는 약간 어두운 음악입니다. 캐리비안의 해적 하면 떠오르는 멜로디 있죠? 그것도 D minor에요. 또, 다크나이트도 왼손이 D로 시작해요. 한스짐머 스스로 D로 곡 쓰는 걸 좋아한다고 했던 인터뷰도 있어요. (캡쳐가 이래서 죄송합니다 한스짐머님..)

        

나는 D(레)를 쓰는 걸 좋아합니다

셜록에서는 음악의 기둥이 되는 베이스가 ‘레’를 지겹도록 쿵쿵 눌러요. 당신의 이야기가 지겹지는 않았지만 해결은 안하고 계속 떡밥이 쌓이길래 대체 이걸 어떻게 수습하려고? 의 생각이 들긴 했거든요. 그런데 거의 끝날 무렵에 반전의 연속으로 모든 떡밥을 회수하네요.      


셜록OST도 그래요. 겨우 12마디를 남겨놓고 레에서 벗어나 도#-도-시-시b-라-솔-파-미-미b까지 그동안 어떻게 참았나 싶을 만큼 거의 한마디 단위로 바꾸며 쏟아놓죠. 그러면서 기존에 유지하던 논리를 놓치지 않아요. 딱 당신 이야기 같지 않나요? 그 많은 얼개를 놓치지도 않았고, 억지로 묶지도 않았는데 물 흐르듯 방향을 바꾸잖아요.      


셜록OST와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이 정확하게 맞는 부분이 또 있습니다. 마지막 한마디요. 반전의 반전으로 소설이 다 마무리된 줄 알았는데 에필로그로 독자의 뒤통수를 한 대 딱 때리잖아요. 음악도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마지막 한마디가 놀리듯이 나오거든요. 이게 꼭 한국에서 누굴 놀릴 때 쓰는 ‘얼레리 꼴레리’와 비슷한 음이라 정말 놀림 받는 느낌이예요. 들어보시면 제가 왜 이렇게 말하는지 아실 겁니다.     


자, 저의 푸아그라 감탄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이 편지가 당신에게까지 닿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이 소설과 셜록홈즈 OST를 연결하는 사람은 저 밖에 없겠지요?           


(하이퍼링크 연결된 셜록홈즈 ost 클릭하시면 악보와 함께 음악을 들을 수 있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그 맑고 환한 밤중에가 어두울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