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에게 가장 필요한 '이것'
서울 딸과 끝 방 딸
“내가 아산병원 알아볼게”
나의 엄마, 길석님이 통증 없이 단지 좀 불편해서 근처 대학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수술하라고 했단다. 길석님은 내게 전화하더니 병원이 이상하다는 말만 5분 째다. 내가 아산병원을 콕 집어 말했더니 더 이상 말이 없다.
전화를 끊고 거실을 스캔했다. 길석님이 보면 이것도 저것도 뭐라 하겠네. 어퍼컷 날아오겠군.
길석님은 20년간 출근하는 와중에도 늘 깨끗한 집을 유지했다. 내가 겪은 엄마가 길석님 한 명이라 엄마들은 다 그런 줄 알고 살았다. 역시, 착각은 자유다.
길석님은 물건을 쑤셔 넣지도 않는다. 모든 수납장 내부도 깨끗하다. 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내 살림하면서 알았다)을 평생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길석님이 집에 왔다. 온 지 5분도 안 돼서 서랍장 스캔이다. 어퍼컷이 장전된다.
무슨 마스크가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냐.
그러게...내가 왜 그랬지.
여긴 구역을 좀 나눠야지.
이런 건 삶아야 뽀얗고,
여긴 뭘 이리 올려놨어.
응, 쏴리. 그르게. 내가 나쁘네.
저건 엄마가 말하는데
대답하는 꼴이라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따, 우리 길석님
어깨 짱짱한 거 보소.
팔을 그리 휘두르는데
아프단 소리도 안 하네.
역시 김 씨(엄마)가 최고야.
최 씨(나)는 비실해서 정리도 못하고.
내다 버려야지 뭐. 안 그려요?”
어퍼컷을 다 피하니 길석님이 나를 흘겨보며 말한다.
“저거는 마흔 넘더니
속에 구렁이 하나가 들어앉았지!”
나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반박했다.
“무슨 소리! 열 마리지! 으흐흐~”
그 후에도 길석님은 꾸준히 어퍼컷을 날렸고 나는 꾸준히 피했다. 먼저 힘이 빠진 길석님은 “몰라. 돼지우리로 하고 살든 말든!” 하고 돌아누웠다.
나는 백허그로 길석님 뒤에 찰싹 달라붙었다. 저리 가라고 질색팔색 하던 길석님도 나중엔 그냥 잤다. 나도 그대로 잠들었다.
아산병원은 마치 정밀하게 분화된 공장 같다. 길석님과 나는 친절한 안내를 같이 들었는데 나만 이해했다. 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나 혼자 돌아다니며 처리했다. 바쁘게 돌고 온 나를 보며 길석님이 힘없이 말했다.
“나만 노인네 된 거 같아”
어퍼컷 날리던 기세 등등함은 어디 갔는지. 세월로 내려앉은 눈만 껌뻑인다. 나는 길석님 어깨를 살포시 안으며 말했다.
“아산병원은 전국에서 오잖아. 이 많은 사람 처리하려고 세분화된 거야. 엄마 시티 사진 여기 교수님 피씨에 등록하고 수납했어. 엄마도 할 수 있는 거니까 기죽지 마. 코로나 예진은 어제 내가 카톡으로 해 놓은 거야.”
담당 교수는 시티 사진을 보며 증상을 듣더니 일단 약물 치료를 하자고, 당장 수술이 필요하진 않다고 했다. 그 말 하나에 엄마의 모든 시름이 씻겼다. 전화 온 친구들에게 신이 나서 보고한다.
우리 딸이 서울 검사를 잡았더라고.
아니, 아산병원.
서울에서 수술 안 해도 된대.
서울 딸 덕이지 뭐.
바로 어제까지 어퍼컷을 피하던 ‘저거’는 1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자랑스런 '서울 딸'이 됐다.
모녀에게는 거리가 필요하다. 만일 우리가 같이 살았으면 내가 길석님 어퍼컷을 끝까지 피할 수 있었을까. 얼마간은 피하겠지만 길어지면 “그만 좀 해” 하며 대들었겠지. 길석님과 나의 물리적 거리는 우리의 싸움을 원천봉쇄했다.
길석님을 보내고 집에 왔다. 오자마자 마스크를 한쪽 서랍에 몰고, 길석님이 콕 집었던 몇 가지를 삶고, 아일랜드 식탁 위의 물건을 다 치웠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소파에서 뒹굴 거리며 유튜브를 봤고 끝 방에 가서 동생과 농담 따먹기를 했다.
아이에게 '너는 종일 그러고 시간을 보낼 참이냐'라고 소리지르려다 길석님 어퍼컷이 생각났다. 아이는 어퍼컷을 빠져나갈 구렁이가 아직 없다.
내가 '서울 딸'이 될 동안,
내 딸은 '끝 방 딸'을 만들어 볼까.
굳이 내가 끝 방으로 가서 “여기 좀 치우고, 이 문제집 좀 하고...”의 어퍼컷을 날리면,
굳이 거실 소파에 같이 앉아서 “유튜브도 교육적인 거 얼마나 많은데 고르는 안목 하고는...”의 어퍼컷을 날리면,
구렁이 키울 시간도, 공간도, 내공도 없는 아이는 “그만 좀 해” 라고 소리치겠지. 고백하자면 이미 몇 번 들었다.
덜 듣기 위해
모녀에게 가장 필요한 ‘거리’를
유지해보려 한다.
길석님 어퍼컷은 오래오래 살아있으면 좋겠다. 살아있는 어퍼컷은 길석님 기력을 측정하는 바로미터일 테니.
나의 어퍼컷은 오래오래 죽어있으면 좋겠다. 죽어있는 어퍼컷은 사춘기에 진입하는 아이와 싸움을 만들지는 않을 테니.
서울 딸과 끝 방 딸,
평화를 위한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