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운동이 안 그렇겠나 싶지만 골프의 언어도 상냥하지 않다. 채로 공을 맞추는 것조차 어려울 때 코치는 늘 말했다. “회원님, 공을 보세요. 공을” 아니 그럼 내가 공을 보고 있지 내 발가락을 보고 있을까요. 나는 공을 계속 보는데 공은 또 안 맞고 코치는 “아유, 이번에 공 안 봤어요.” 이런다. 환장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가지고 힘을 빼란다.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여기에도 있다. 코치가 시범을 보인다. 정말 단단해 보이고 정말 힘을 뺀 거 같이 보인다. 이리도 잘 보이는 걸 두고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라고 할 수 없는 노릇. 내 이해력의 문제이겠거니 하고 입을 닫았다.
내게 있는 몹쓸 성실성이 사십 몇 년간 딱히 인생에 도움을 주지 않다가 골프에서 비로소 빛을 발했다. 이해하지 못해도 성실하게 열 번의 레슨을 채웠더니 적어도 저 말이 뭐를 하라는 소린지는 알아듣는 단계까지 왔다. 알아들은 만큼 내 몸이 따라주면 더 좋았겠지만.
나에게 당연한 일이 남에게도 당연한 일이 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을 채워야 했다. 너무 당연해서 설명할 거리조차 없는 일이 남에게는 외계어로 들릴 수도 있다는 것. 글로 보면 당연한데 생활에서 당연하지 않던 일을 골프 레슨이 다시 불러왔다.
공을 분명 보고 있었는데 공 좀 보라고 소리 높이는 코치와 30분을 씨름하고 집에 온 날, 재활용 종이를 모아놓은 상자에 쏟아놓은 휴지 더미를 보고 그전처럼 화가 치미지 않았다. 애가 보기에는 종이와 휴지가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내가 공을 보고 있던 것처럼 애도 재활용 분류를 보고 했을 테지. 비록 코치 눈에는 내가 공을 안 보는 것 같고, 내 눈에도 애가 분류를 안 보는 거 같긴 했지만.
휴지더미를 일반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아이를 불러서 무심히 말했다. “휴지는 종이 버리는데 아니고 그냥 일반 쓰레기야. 이젠 좀 기억해주라.” 아이는 멋쩍게 씩 웃고 자기 방으로 가버렸다.
언어는 상대적이어서 내가 아무리 상냥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그릇이 작으면 ‘뭔 소리야’가 된다. “공 좀 보세요.”를 한 달 내내 들으면서 상냥한 언어를 곱씹었다.
잘하고, 자라기 위해서 무심하게 시간을 쌓는 것. 배우고 가르치는 언어가 나와 상대 모두에게 상냥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 이런 작은 진리가 골프와 육아 사이를 넘나들었다. 부디 나의 말도 아이에게 상냥하게 닿아 더이상 종이 박스에 휴지가 들어가지 않기를. 나도 공을 뚫어지게 볼 테니 좀 제대로 맞아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