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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Aug 05. 2021

식기세척기 가스라이팅

언어의 위력

나는 고모가 없고 이모만 있다. 어릴 때는 고모가 이모보다 높은 사람인 줄 알았다. 명절 때 외갓집에 가면 엄마를 고모라고 부르는 사촌들이 많았고 고모라 불리는 엄마는 그곳에서 한없이 편해 보였기 때문이다.

딱히 이모가 일하는 걸 본 적도 없으면서 왜 고모가 더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배워서 안 게 아니고 혼자 자연스레 느낀 거라면 전반적인 분위기가 가르친 게 아닐까.

어제 페북(과 브런치)에 식기세척기 이야기를 썼다. 댓글에는 '식세기 이모님'이 몇 번 나왔다. 내가 혼자 깨친 고모와 이모의 위상 차이를 여기서 봤다.

언어는 생각을 지배한다. 대표적으로 가스라이팅도 언어로 상대의 생각을 지배한다는 이론이 아니었던가. 언어로 박제하면 팩트에 상관없이 진리가 되어버린다. 왜 식세고모님은, 삼촌님은 없을까. 고모와 삼촌은 설거지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언어가 정해버렸기 때문이다.

'태극낭자의 금메달'이 뭇매를 맞고 '태극전사, 태극궁사'라는 중계가 칭찬을 받는 시대가 됐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말, 이의를 제기하면 '유난떠네'가 되었던 말들이 더 이상 유난의 범주에 있기를 거부하는 시대다. 혹자는 예민보스라 비아냥거리겠지만 그 비아냥까지도 자연스레 뭇매를 맞을 시대가 곧 올 거 같다.

그 시대의 이모들은 좀 더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설거지와 청소 같은, 누군가의 흔적을 치우는 일 말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분류되면 좋겠다. 식세고모나 삼촌도 물른 싫다. 기계는 그냥 기계로만 남아 사람을 역할로 구분하지 않기를 바란다. 식세기에 사람을 붙이지 않고 식세기님으로 불러도 나의 존경심은 충분히 전달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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