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할머니
2007년 가을, 상견례 날이었다. 토요일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새로 산 정장을 입고 샵에 가서 드라이를 했다. 자연스럽지만 내 손으로는 절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없는 머리와 화장을 하고 구 남친(현 남편)과 기념사진을 찍고(아우, 촌스러워라) 종로 어느 일식집에 갔다.
상견례는 예상대로 약간 어색하고, 약간 화기애애한, 51만큼 좋았다가 49만큼 불편한 자리였다. 엄마는 나를 조금 칭찬했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애라고 어설피 돌려 차고, 구 남친 엄마(현 시어머니) 역시 우리 아들도 똑같다고 그러고. 각 집의 아빠들은 단답형 배틀이라 할 만큼의 대화만 하며 사이의 침묵은 술잔으로 채웠다.
“그렇죠. 할머니랑 사는 애들이
좀 순한 면도 있어요.
우리도 할머니랑 꽤 오래 살았죠”
할머니와 순한 애들의 상관관계는 모르겠으나 저 문장 하나가 내게 쿵 떨어졌다. 앞뒤 맥락은 잘 듣지도 못했다. 그 즈음은 할머니 돌아가신지 반년 밖에 안 됐을 때다. 할머니의 히읗 자에 언제든 눈물이 터질 수 있는 때였고 히읗자는 두 번이나 나왔다. 고개를 얼른 숙였다. 손등에 따뜻한 물방울 하나가 톡 떨어졌다. 엄마가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
“아이고, 얘가 이래요. 아직 얼마 안 돼서. 은영아. 고개 좀 들어 봐”
엄마가 부르는데 할머니가 부르는 것 같다.
“우리 강아지 이런데서 울면 어떡혀. 울면 바보여. 뭐 서럽다고 울어”
후드득 손등에 물방울이 연속으로 떨어진다. 엄마가 내게 휴지를 주며 말을 이어간다.
“제가 출근을 하느라 아침저녁으로만 애들을 봤어요.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제 시어머니가 계셨고요. 그 후에도 몇 달씩 지내셨어요. 그러다보니 각별해서... 아이고, 할미 얘기 그만해야 할까 봐요. 얘가 아주...”
휴지로 수습할 단계가 아니다.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갔다. 거울을 보고 알았다. 맞다, 나 오늘은 아이라인도 그리고 마스카라도 했지. 그새 까먹고 휴지로 다 뭉개 놓다니. 거울 속의 나는 상견례 하는 아가씨가 아니라 방금 실연당하고 혼자 깡소주를 마시는 아가씨다. 갑자기 웃음이 났다.
‘할머니, 할머니 말 맞네. 뭐 서럽다고 울어서 얼굴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아이라인과 마스카라 조합은 막강했다. 내가 하면 금방 지워지던데 이건 왜 안 지워지지. 안 지워지려면 번지지도 말 것이지. 아무리 정리해도 상견례 아니고 깡소주다. 방법이 없다.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다. 엄마가 그만 울란다. 나는 고개를 살짝 들고 말했다.
“아니 엄마,
이제 안 우는데 화장이 아주 그냥...”
최선을 다해 지저분한 마스카라와 아이라인은 어색한 분위기를 단번에 무장해제 시켰다. 먼저 우리 엄마가 빵 터졌다.
“아이고, 우리 딸 판다가 돼서 왔네”
엄마의 말에 근엄했던 아빠들의 웃음이 터졌다. 구 남친은 맘껏 웃지 못하고 그의 얼굴 근육을 꽉 잡고 있다. 잡고 있으면 뭐해, 입 꼬리의 실룩거림은 어쩔 거야.
어색함과 화기애애 51 대 49가 아주 잠깐 동안 어색함 0에 화기애애 100이 됐다. 한번 100으로 넘어가니 못해도 80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화기애애 80을 유지하는 상견례는 명랑했다. 상견례도 명랑할 수 있구나.
명랑한 상견례가 끝나고 나와 구남친만 남았다. 로드샵에 들어가 리무버로 판다 마크를 지우고 클렌징 폼을 사서 세수를 했다. 신발 벗고 다리를 뻗을 수 있는 술집을 찾아 들어갔다.
그 전까지 나는 할머니 얘기만 나오면 무조건 침울해져서 꺽꺽 울었다. 우느라 할머니 이야기를 할 틈이 없었다. 상견례 날에 생각지도 않게 터진 웃음은 할머니의 포지션을 조금 옮겨 놨다. 울지 않는 포지션으로, 울어도 명랑할 포지션으로.
처음으로 구 남친에게 할머니의 이야기를 길게 했다. 가끔 차오르는 눈물이 말문을 막았지만 예전처럼 쏟아지듯 울지 않았다. 명랑하게 울면서 할머니의 특별함을 그에게 자랑했다. 할머니는 없었지만 할머니가 명랑하게 있는 첫 번째 순간이었다. 깡소주마저 달디 단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