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말들을 밀어내다가 결국 끌려가는
은유_다가오는 말들
은유 작가님의 ‘다가오는 말들’을 또 읽었다. 세 번째인가. 이번에는 타자로 필사하며 읽었다. 저번에 울던데서 또 울었고 덮었던 데서 또 덮었다. 세 번째인데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은유 작가의 책들이 그렇다. 그의 책을 읽으면 아무렇지 않게 살던 일상이 아무래져버려서 한동안 까치발을 들어야 한다. 턱 밑까지 차오르는 찰랑거리는 질문들을 피해, 까치발을 들지 않으면 질문에 잠식되어 숨이 막힐 거 같아서다.
그의 책들은 그동안 당연했던 것들이 왜 당연한지 자꾸 묻는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대답하는데 그 당연한 걸 물으시면 어쩝니까...라고 발뺌하고 싶은데 어느 한 부분도 그게 안 된다. 그래서 숨을 고르면서 읽어야 하고 잠깐 쉬다가 읽어야 한다.
이번에 필사로 읽으면서 어느 한 부분도 안 되는 그 이유가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핑크빛 되는 그런 사랑 말고, 세상은 여전히 잿빛인데 온도가 조금 올라가는 그런 사랑 말이다.
온도가 올라간다고 잿빛이 핑크빛이 되지 않는다. 여전히 잿빛이어도 같은 공간에서 누구에겐 아픈 온도이고 누구에겐 아무렇지 않은 온도라는 것, 이 온도를 인지하는 첫걸음이 은유의 책인 것 같다. 온도의 차이가 생길 때 작가는 무 자르듯 범위를 나누지 않는다. 대신 차이를 만드는 구조를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연결되지 않은 관계인데 지난한 노력을 이만큼 들인다면 사랑이 아니면 뭐라고 할까.
그의 깊이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따라 하고는 싶어서 은유 책 속의 책들을 또 탐한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책 속의 책들에 갈증이 나기 마련이니까. 오늘도 아일랜드 식탁에는 책탑이 쌓이고 나는 눈으로 저들과 만날 시간을 잰다. 다가오는 말들이 너무 무거워서 도망치다가 결국 내 손으로 사슬을 채워 끌려가는, 은유 작가님의 책은 내게 그렇게 다가와서 끌고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