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이름 너머의 것들을 품을 수 있음을 알려준 심시선, 소설 <시선으로부터>의 주인공 이름이다. 시선으로부터는 심시선의 자손들이 시선의 제사를 위해 하와이로 가족여행을 가면서 시작된다.
매체를 통해 보는 가족은 늘 이분법의 양 끝단에 있었다. 아주 친하거나, 아주 증오하거나. 무소식이 희소식으로 살아가는 내 기준으로는 둘 다 어색했다. 그러다 시선의 가족을 보며 내 시선이 더 밝아지는 게 느껴졌다.
심시선은 재혼했다. 배 다른 남매 대신 씨 다른 남매라고 해야 할까. 일일 드라마의 ‘다른’ 남매들은 세상없을 원수지간이거나 출생의 비밀을 모른 채 사랑에 빠졌다가 그야말로 드라마를 찍지만 시선의 자녀들은 그저 담백하다. 핏줄이라는 전제를 제외하고도 인간 대 인간의 예의를 지키는 관계라고 할까. 그 건조함이 광대한 사랑 범위의 어디쯤에 있었다.
태도의 문제였다. 그저 ‘심시선’이라는 특별했던 엄마를(할머니를) 아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안전한 태도를 갖춘 사람들 말이다. 더할 것도, 덜 할 것도 없는 태도를 유지하다가 누군가가 한발 더 내딛는 그 타이밍이 겹치면 그만큼 더 가까워지는 사이. 따지고 보면 핏줄이든 아니든 관계는 그렇게 쌓아가는 게 정석이 아닐는지.
물론 가족은 시간에 밀려 건조함이 저절로 걷히기도 한다. 그러나 그 ‘밀리는’ 속도는 제각기 달라서 누구는 이제 시작인데 누구는 한 바퀴 돌아 저만치 더 가 있기도 한다. 서운함은 이 간극에서 나온다. ‘가족끼리 어떻게 그럴 수 있어’는 때로 간극을 모르는(모르고 싶은) 사람의 마음 어딘가에서 터져 나온다.
시선의 가족들은 알게 모르게 그 간극을 이해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 특이한 제사 ㅡ 하와이에 가서 심시선 님이 가장 좋아할 만한 아이템을 찾아 제사상에 올려보자 ㅡ 가 정말 이뤄졌는지도 모르겠다. 각자가 생각하는 심시선의 선호도를 찾으면 되는 거니까. 선호도를 찾는 여정 중 일부는 ‘나’의 하와이 여행도 포함되니까. 죽은 자를 위해 산 자가 희생되지도 않고, 산 자끼리의 우열도 가리지 않는 제사, 심시선이 자손들에게 준 특별한 시선이다.
보도 듣도 못한 제사였지만 태초의 자연스러움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 거 같다. 각자의 질서가 있었고 그 질서는 서로에게 다정했으며 그 다정은 때로 가족애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더 ‘자연스러운’ 가족 같았다.
‘가족이니까 이래야 해!’는 폭력의 친밀한 이름일지도 모른다. 노력 없이 단어로 그저 묶여버리는 관계는 없다. 시선으로부터는 그런 시선을 새롭게 정리해준다. 다른 시선을 주는 심시선을 보면 사고가 확장되는 기분이 든다. 형태가 없는 확장이지만 삶을 더 잘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준다. 책 한 권을 읽어서 더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로 충분하지 않을까.
#시선으로부터_정세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