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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촛불 맨드라미 Nov 20. 2024

벌 소동

  “으~~~!”

 석 달 전, 풀을 뽑다 말고 신음 소리와 함께 남편이 다급하게 들어왔다. 남편의 왼쪽 목덜미와 손등에는 물집이 커다랗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화단에서 풀을 뽑던 남편이 벌에 쏘였던 것이다. 벌 쏘임에 좋은 약이 뭔지도 모르는 터라 일단 ‘00디’를 발라 주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했더니 벌침부터 빼내고 비눗물로 씻어 중화시키란다. 목덜미와 손등에서 침을 찾아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벌에게 쏘인 곳을 손톱으로 계속 긁어서 침이 빠진 것 같다며 비눗물로 씻기만 했다. 


 “모란꽃 주변의 풀을 뽑고 있는데 갑자기 벌 한 마리가 왼쪽 손등을 쏘았어.”

 “풀이 흔들리니까 벌들이 떼 지어 날아오르면서 그중 한 마리가 이번에는 왼쪽 목덜미를 쏘았고.”

 그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뭔가 형언할 수 없이 찌르는 듯한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었단다. 정말 강력한 벌침이었나 보다. 황급히 수돗가로 가 물 대포를 쏘아 벌들을 쫓아내고 살펴보니 모란꽃 가지에 벌집이 매달려 있었단다. 


 벌에 쏘여 응급실까지 다녀왔다는 동네 분의 얘기가 생각나 병원에 가자고 했더니 싫다고 했다. 어렸을 때 벌에 쏘인 경험이 많아서 괜찮다고만 할 뿐. 장수말벌이 위험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기에 혹시 장수말벌이었냐고 물었더니 땅벌이라고 했다. 땅벌에 대해 아는 게 없었던 나는 장수말벌이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응급 처치를 마친 남편은 커다란 모자와 수건으로 목둘레를 감싸고 농사용 비닐을 온몸에 감싼 채 다시 모란꽃으로 갔다. ‘00 킬라’를 분사해 벌들을 쫓은 후 브로콜리만 한 벌집을 떼어내 풀이 무성한 둔덕으로 던져 버렸다. 


 우리 집에는 작년에 심은 포도나무가 네 그루 있다. 작년엔 우리 집 땅에 적응하면서 자라기만 하더니 올해엔 포도가 열리기 시작했다. 조그맣고 귀여운 연두색 포도가 신기하고 기특했다. 남편은 매일 들여다보며 물도 주고 벌레도 잡아주며 정성을 다했다. 한참 잘 자라던 포도가 성장을 멈춘 듯 잎이 누렇게 변해갔다. 초보 농부인 남편이 유튜브를 검색하고 영농조합에도 문의했지만 그 원인도 해결 방법도 알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수확을 포기하고 포도나무를 살리기 위해 농약을 쳤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포도봉지를 씌워 놓은 채. 


 농작물은 사람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계속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지 않으면 수확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리라. 남편이 지속적으로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병충해 관리도 해주었건만.... 죽어가는 포도나무를 보면서 농사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온갖 정성으로 농작물을 키우는 농부들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다행히 보름이 지날 무렵 포도나무 끝에 잎이 다시 나기 시작했다. 어느덧 8월 말, 포도나무에 큰 새들과 벌들이 날아와 봉투 틈을 비집고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남편은 물 대포와 ’00킬‘을 이용해 조심조심 벌을 쫓아가며 포도를 수확했다. 포도 알은 작았지만 엄청 달콤했다. 수확을 포기한 포도나무에서 이렇게 달콤한 포도를 얻다니! 그야말로 감격 그 자체였다. 몸이 병들어 가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열매를 키워낸 포도나무가 경이로웠고 너무나 쉽게 수확을 포기해버린 우리가 부끄러웠다. 


 ‘즈즈즈’, ‘지지지’

 문풍지가 바람에 떠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검고 커다란 벌 한 마리가 천장으로 날아올랐다. 수확한 포도 봉지를 벗기던 나는 기겁해 소리를 질렀다. 포도즙을 빨다가 갇혔던 장수말벌이 날개를 부딪치며 힘겹게 봉지를 빠져나왔던 것이다. 거실과 부엌 위를 종횡무진 날아다니는 벌을 피해 술래잡기하듯 나도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다. 문을 열고 간신히 내보냈는데 연거푸 세 번이나 더 나오는 바람에 벌을 피하랴 내보내랴 혼비백산했다. 


 며칠 전, 추석 음식 준비로 분주해 하고 있는 내게 남편이 부엌 뒤 창문 밖을 올려다보라고 했다. 집 뒤쪽은 야트막한 산이 있어서 제법 큰 나무들이 서 있다. 올려다보니 키 큰 나무 꼭대기쯤에 커다랗고 둥근 공 하나가 달려 있었다. 그러잖아도 며칠 전에 그걸 보고 새가 집을 지었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새집이 아니라 벌집이란다. 커도 커도 너무나 큰 벌집이었다. 연갈색으로 둥글게 지어진 집이 마치 운동회 날 점심시간을 알리는 박 터뜨리기의 박같이 생겼다. 협동의 귀재라고는 하지만 작은 벌들이 어떻게 저런 큰 집을 지었을까? 너무나 신기해서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추석 차례를 지내러 온 가족들에게도 저게 벌집이라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좌불안석 걱정이었다. 벌들과 함께 잘 지내야 하는데,,,,, 


 벌도 사람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공생하는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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