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일간의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의 첫 일정은 영민이 집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저녁 늦게 도착한 우리는 중간 기착지에서 숙박을 했다. 3월 하순이지만 전혀 난방이 되어 있지 않은 숙소는 꽤나 추웠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절전 중이란다.
평지에 빽빽이 들어선 나무들과 그 사이로 보이는 단아한 진회색 지붕들, 그들은 중소도시가 되었다가 작은 마을이 되었다가 듬성듬성 한 두 채의 외딴 가옥이 되기도 했다. 드넓은 지평선과 광활한 하늘, 끝없이 펼쳐진 노란 유채꽃밭과 초록 들판, 길가의 꽃과 나무, 집과 마을들이 어우러져 너무나 아름다웠다. 프랑스의 전형적인 시골이 이런 거구나 연신 감탄했다. 구불구불한 시골길과 야트막한 언덕길을 달려 4시간여 만에 영민이 집에 도착했다. 예쁜 집들이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듯한 조용한 마을이었다.
영민이와 그녀 남편의 환대를 받으면서 하얀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마당에는 꽃과 채소를 가꾸는 정원이 있었고 건물 양옆으로는 갖가지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개나리와 붓꽃, 수선화가 활짝 피어 우리를 반겼다. 뒷동산에는 우람한 줄기를 뽐내는 커다란 앵두나무와 이름 모를 들꽃들이 아직 덜 핀 채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각종 모종과 초미니 유리 하우스, 잘 정리된 텃밭과 꽃밭이 부부의 정성스러운 손길을 말해주었다.
시부모님이 60년 넘게 사셨던 집을 현대적 감각으로 리모델링해 살고 있었다. 고풍스러우면서도 모던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부엌 벽에 기댄 장식장에는 시부모님의 손때가 묻은 그릇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고, 거실과 침실 벽에는 예쁘게 수놓아진 액자가 걸려 있었다. 어머님의 작품이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수놓은 작품이란다. 선머슴 같던 그녀가 만든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정말 네가 한 거야?”
“그럼~ 얘는. 우아하고 조신한 나를 뭘로 보고.... 내가 틈틈이 수놓은 거야.”
영민이는 웃으면서 눈을 살짝 흘겼다.
“와! 네게 그런 면이 있었어? 몰랐네~”
그녀는 고이 모셔 두었던 다른 작품들도 가져와서 보여주었다. 정말 꼼꼼하게 수놓아진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식사 시간이 꽤 길다면서 그녀가 샐러드와 빵, 견과류, 잠봉, 포도주를 내놓았다. 그리고 비장의 무기! 양고기 스튜를 내놓았다. 그녀 남편이 직접 만든 양고기 스튜 맛은 일품이었다. 양고기 특유의 냄새가 날까 봐 걱정했는데 냄새는커녕 너무나 맛있어서 더 먹기까지 했다. 오래 걸린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앉아 뒷동산의 앵두나무와 들꽃을 바라보니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영민이가 동네 구경을 시켜 주겠다며 나서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받쳐 들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아담한 정원이 있는 예쁜 현대식 집들과 남편이 어릴 때 우유를 샀다는 오래된 집, 나지막한 아파트, 동네 뒤편에 있는 넓은 풀밭 등을 구경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예외 없이 우리를 향해 ‘봉주~’ 미소로 인사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멋쩍어서 애써 눈길을 피하며 길을 오가는데.... 그들의 미소 띤 인사가 따뜻하게 느껴져 좋았다.
헤어질 시간이 되자 영민이가 신신당부를 했다.
“이곳에도 오래된 성당과 수도원, 절경이 많아.
내년에 꼭 다시 와서 한 달 정도 우리 집에 있다가 가렴.“
“아무리 친구라도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건 싫은데...”
“그건 민폐가 아니야. 오히려 나를 도와주는 거야. 나 많이 외로워.”
그녀의 속내에 마음이 짠했다.
일벌레인 내가 정년퇴직하면서 느꼈던 그 허허로움을, 번잡한 도시의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낙향했을 때의 그 공허함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다가 날개가 꺾인 듯한 상실감을 그녀도 심하게 앓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속마음을 털어놓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친구가 가까이에 없다는 게 가장 힘든 일인 것 같았다.
서로에 대한 격려와 긴 포옹 끝에 차에 올랐다. 그녀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보였다. 위로를 하는 내 눈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멀어져 가는 우리 차를 향해 그녀는 계속 손을 흔들고 있었다. 멀리 한 점이 될 때까지....
바쁘게만 살았던 그녀가 이젠 자신을 잘 보듬어 주면서 살기를,
그곳에서 속내를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절친한 친구를 사귀기를,
한적한 시골 생활에 잘 적응하기를 기도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