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을 뵙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겨울을 재촉하는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댄다. 햇볕은 아직 따뜻한데 그늘진 곳은 꽤나 춥다. 부는 바람만큼 내 마음도 스산하다. 한 달 만에 뵙는 어머니는 얼굴도 몸도 많이 수척해지셨고 인지력도 많이 떨어지셨다.
아들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 기차역까지 배웅 나오신 어머님이 넘어질세라 손을 꼭 붙들고 대합실까지 모시고 갔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렇게 손잡고 걸을 수 있을지 마음이 착잡하다. 어머님은 아들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허리가 아파 힘들어하셨다고 한다.
작년 1월, ‘그녀의 하루’ 글을 보신 어머니는 크게 기뻐하셨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에 대해 글을 써준 것이 고맙다며 꼭 안아주셨다. 주위에 자랑하고 싶은데 할 수 없다고도 하셨다. 며느리와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거나 며느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불편감을 줄 것 같아 염려스럽다고 하시면서. 10여 년 전 아버님이 떠나신 뒤, 혼자 계시는 어머님이 걱정스러워 찾아뵙는 자식들에게 “내 스케줄이 어긋나니까 오지 마. 이렇게 건강하게 즐겁게 잘 살고 있잖아“라며 방문을 사양하셨다.
그런 어머님이 작년 여름, 잠결에 화장실에 가다가 넘어지셨다. 응급실로 실려가 척추 시술을 받고 점차 회복되면서 집으로 돌아오셨다. 자식들 집에서 같이 사셔야 한다고 해도 어머님은 혼자서 잘 지낼 수 있다며 완강히 거절하셨다. 하지만 시술한 허리 때문에 혼자서 지내기가 힘이 들자 마음 편한 딸에게 가서 지내기로 결정하셨다.
시누이의 지극한 정성을 받으면서 조금씩 좋아지시는 듯했는데 이제는 사위어가는 모습이 역력하다. 청력이 떨어져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시고, 이해력도 예전 같지 않다. 즐겨 치던 피아노도 그만 두시고, 그 좋아하던 임영웅의 노래도 소음으로 느껴질 정도라고 하신다. 배구, 탁구, 배드민턴 각종 경기를 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온몸으로 응원하셨는데 이젠 만사가 귀찮다며 잠만 주무신다. 지나가버린 삶의 흔적들을 꿈속에서 더듬어 보고 계시는지....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힘도 빠지고 말도 많이 어눌해지셨지만 그래도 말끝마다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으신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내게 즐겁게 다녀왔냐며 그 기분을 오래 간직하고 웃으며 살라고 당부하신다. 정신력과 총기가 남다른 분이셨는데 제발 끝까지 꼭 붙들고 계시기를 바란다.
점점 사그라드는 어머님의 모습이 돌아가신 친정 엄마와 겹쳐지면서 자꾸만 눈물이 난다. 모든 생명체가 끝을 향해 가는 길, 그 길이 왜 이리도 힘겨워 보이는지.... 우울감에 빠긴 내게 남편이 나지막이 말한다. “누구나 가는 길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고.
머지않아 곧 나의 갈 길이고 누구나 가는 길. 식도암으로 앙상하게 마른 채 돌아가신 아버지, 혈전이 장기를 막아 수술 후 깨어나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엄마, 다 타버린 장작처럼 금방이라도 폭삭 주저앉을 것 같은 모습으로 지내시다 갑자기 쓰러져 사흘 만에 돌아가신 시아버님, 그분들의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나는 언제쯤 그 길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