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4일은 김민기 님의 장례식 날이었다. 1951년생 향년 73세, 돌아가시기엔 아직 젊은 나이다. 조화도 조위금도 연명 치료도 모두 마다고 하셨단다. 이 시대에 몇 안 되는 참 어른이시다.
김민기 님은 7080 세대에게 아련한 추억을 소환해 준다. 청년 문화를 이끌었고 ‘아침 이슬’과 ‘상록수’로 기억되는 ‘포크계의 거목’이다. 당시 통기타 세대로 불렸던 젊은 세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서민들의 삶을 노래로, 연극으로 진솔하게 표현하신 분이다. 평생 올곧은 마음으로 초지일관하기 힘든 세상에서 끝까지 맘껏 푸르른 소나무처럼 살다 가셨다. 암울하던 시대에 이웃과 사회의 아픔을 보듬으면서 말없이 늘 그 자리를 지키셨던 분이다.
그는 1951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서울로 올라와 재동 초등학교, 경기중고교를 거쳐 1969년 서울대 미대 회화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획일적인 수업 방식에 거부감을 느끼며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1970년 작곡, 발표해 ‘건전 가요 서울시 문화상’을 받았던 ‘아침이슬’이 1972년 ‘10월 유신’을 맞으면서 불온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어두운 시절, 시류에 따라 상징적인 노래가 되어 지금까지 데모나 사회 변곡점이 있을 때마다 불리고 있다.
자신이 체험한 현실을 담백하게 담아낸 그의 노래는 억압과 감시 대상이 되어 줄줄이 금지곡이 되었다. 생계를 위해 공장과 탄광에서 막노동을 하고 농사를 지으면서도 작곡을 계속 해나갔다. 봉제 공장에서 일하며 '상록수'를 작곡했고, 1970년대 노동자의 삶과 노동현실을 적나라하게 다룬 노래 굿(창극唱劇, 희곡 공연과 뮤지컬 공연의 중간쯤에 있는 희곡의 방식) '공장의 불빛'을 제작했다.
사비를 털어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을 개관, 연극, 뮤지컬, 콘서트 등 다양한 공연을 열며, 무대를 찾아 방황하던 후배들에게 공간을 제공하였다. 고(故) 김광석, 윤도현, 들국화, 강산에, 박학기, 동물원, 여행스케치, 유리상자, 안치환, 노영심, 이적, 장기하 등이 이 무대를 거쳐 갔다.
‘극단 학전’을 창단하고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무대에 올려 황정민, 설경구, 장현성, 조승우, 김윤석, 안내상, 이정은 등 수많은 배우들을 배출했다. 70만 명이 넘는 관객으로 소극장 뮤지컬의 새 역사를 썼다고 한다. 성황리에 이어지던 <지하철 1호선> 공연을 중단했는데, 그 이유가 돈만 벌다 보면 돈 안 되는 일을 못 할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단다.
그는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공연이 없다는 것을 알고 적자를 감수하면서 작품을 만들었다.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등 어린이 공연과 청소년 뮤지컬 ‘굿모닝 학교’를 선보이며 어린이·청소년 극 지킴이 역할도 했다. '오징어 게임'의 정재일도 학전 어린이극에서 음악을 맡으며 실력을 쌓았다고 한다.
배울 학, 밭 전이라는 의미의 학전(學田)은 못자리 농사라며, 못자리에선 애들을 촘촘하게 키우지만 추수는 큰 바닥으로 가서 거두게 될 거라고 한 그의 말대로 그가 배출한 예술인들은 걸출한 스타가 되었다. 수많은 예술인들의 디딤돌이었던 학전 소극장은 재정난과 그의 위암 투병으로 2024년 문을 닫았다.
스스로 ‘뒷것’이라고 말한 대로 그는 뒤에서 묵묵히 인재를 발굴하고 키우며 우리 대중문화를 이끌었다. 제도권의 압제나 감시가 없었다면 자신의 재능을 훨씬 더 꽃피웠을 그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그의 주옥같은 노래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상록수‘이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힘들기만 했던 젊은 시절, 돌보는 사람 하나 없이 땀 흘리고 깨우치며 스스로 모든 것을 이겨나가야 하는 엄혹한 시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 거친 들판을 정신없이 헤쳐오면서 이제 겨우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칠은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수많은 노래로 삶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준 그분이 무척 감사하다. 부디 주님 곁 하늘나라에서 평안하고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