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르드에서 만난 청년(?)

by 촛불 맨드라미

작년 3월 하순, 성모 발현지인 프랑스 루르드를 다녀왔다. 루르드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곧바로 성모님 발현지로 갔다. 드넓은 광장을 빙 둘러서 있는 성인들의 조각상과 화려한 모자이크 장식의 웅장한 ‘장미의 성모 성당’, 성모님이 발현하신 마사비엘 동굴, 그 위에 세워진 ‘무염시태 성당’ 등을 둘러보았다.


저녁 식사를 한 뒤 밤 9시 촛불행진 기도에 참석했다. 파티마에서의 추웠던 기억이 떠올라 옷을 겹겹이 껴입고 간 덕분에 춥지는 않았다. 초를 사서 미사에 참석했다. 미사가 끝날 즈음, 신부님이 붙인 촛불을 신자들 손에서 손으로 건네받아 초에 불을 붙였다. 성모님 상을 모시고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넓은 광장을 행진했다. 발현하신 것을 기념하여 지은 성당 외벽에는 거룩하고 성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성모님의 영상 모습이 드리워져 있었다. 큰 소리로 합송하는 묵주기도와 촛불, 미디어 파사드의 성모님, 행진하는 신자들의 분위기, 이 모든 것이 그저 감사하고 감격스러웠다. 마치 천상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이 모습을 떠올리면 기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감동이 밀려왔다.


다음날 주일이라 미사에 참례하러 갔다. 성당이 많으니 아무 곳에서 미사를 봐도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미사를 드리는 성당은 몇 개 밖에 없었다. 성당 위치를 안내받고 비오 10세 성당을 찾아갔다. 내부가 철제로 된 엄청나게 큰 성당이었다. 신자석이 중앙 제대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놓여 있었다. 벽엔 모든 성인 성녀들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그 크기와 규모에 놀랐고,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운 세계 각 처에서 온 신자들의 수에 또 한 번 놀랐다.


바로 내 옆에서 미사에 참례하는 청년에게 관심이 쏠렸다. 미사 시간 내내 신실하게 미사에 집중하는 모습,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 장궤틀에 앉아 있기가 무척 힘들어 보이는데도 오랜 시간 장궤하고 있는 모습, 미성으로 성가를 부르는 모습이나 기도드리는 모습이 너무나 기특하고 예뻤다. 불어로 드리는 미사라 하나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 청년의 진지한 모습은 무척 인상에 남았다. 성가 부르는 동안 반복적으로 들리는 노랫말을 녹음해서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I believe'란다. 지금 영어를 배우고 있는 중이라며 멋쩍은 미소와 함께.


언어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미사 예식은 세계 공통이어서 흐름을 알고 참례할 수 있었다. 평소 우리나라에서 드리던 미사보다 훨씬 더 길었다. 옆에 앉은 청년에게 결례를 하면서 말을 걸었다.

“네 목소리가 아주 고와!“

“아름다운 목소리로 성가를 부르는 너를 보게 돼서 행복해.”

그 청년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청년을 방해해 너무나 미안하다. 수업 시간에 지루함을 참지 못해 옆 친구와 얘기를 주고받던 우리 반 아이들과 똑같은 행동을 해버린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미사가 끝난 후 어디서 왔냐고 물었더니 핸드폰을 꺼내 프랑스 지도를 보여주면서 툴루즈에서 왔다고 했다. 대학생이냐고 물었더니 고등학생이란다. 옆에 있는 흑인 친구도 같은 고등학교에서 왔단다. 루르드 성지 순례 차 그룹으로 왔다며 인솔자가 따로 있다고 했다. 그들은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이라고 했더니 단박에 우리나라 말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우리 드라마를 보고 배웠단다. 그 학생들과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남편이 빨리 가야 된다며 나를 잡아끌었다. 빡빡한 일정에 밀려 할 수 없이 그 자리를 떠야 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순수한 학생들이나 청년들을 보면 마냥 예쁘기만 하다. 말을 걸고 싶고 친절하게 대해 주고 싶고, 뭔가 도와주고 싶다. 내 안에 잠재해 있는 교사로서의 어떤 사명감이 무의식중에 작동하는 모양이다. 미사에 전심전력하는 그 학생의 모습이 내 눈에도 사랑스러운데 주님 보시기엔 얼마나 더 사랑스러울까?


그 학생과 친구들이 지금처럼 주님을 찾으며 바르고 순수하게 자라나기를 기도드리며 다음 행선지를 향해 출발했다.


*주

-무염시태 : 원죄 없는 잉태

-미디어 파사드 : 미디어(media)와 건물 외벽을 뜻하는 파사드(facade)의 합성어로, 건물

외벽을 스크린으로 활용하여 다양한 영상을 투사하는 것

-장궤 : 천주교에서 미사를 볼 때, 존경을 나타내기 위해 신자들이 두 무릎을 바닥에 대고 허리를

세운 채 꿇어앉는 자세

-장궤틀 : 신자들이 장궤를 할 때 무릎을 대는 길고 좁은 나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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