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친구 영민이의 도마질 소리와 고양이 사료 부수는 소리에 맞춰 잠을 깬다. 세수를 하고 옷을 갖춰 입은 후 거실 끝 부엌으로 나가 아침 식사 차릴 준비를 한다. 개인 식탁보를 깔고 그 위에 나이프와 포크, 때에 따라선 젓가락과 숟가락을 놓는다. 식탁보 옆엔 항상 천으로 된 냅킨을 깔아 놓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관광지가 아닌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선 음식물을 닦기 아까울 정도로 고급스럽고 예쁜 천 냅킨이 나왔다. 음식물을 닦으면 얼룩지는데 어쩌나, 음식물 얼룩은 지워지려나 염려되었다.
그녀가 준비하는 아침 식사 조리를 돕고 완성된 음식을 접시에 담아낸다. 미적 감각과 거리가 먼 내가 대충 담아내면 그녀가 조언한다. 이 음식은 이 접시에 이렇게, 저 음식은 저 접시에 저렇게. 그녀가 담아낸 음식들은 맛도 맛이지만 미적 감각이 돋보여 너무나 먹음직스러웠다.
프랑스에서는 식사 시간이 엄청 길다고 했던 그녀의 말을 실감하면서 보낸 2주였다. 후다닥 먹는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전식으로 다양한 종류의 샐러드를, 본식으로 소고기나 닭고기 요리를, 후식으로 달달한 쿠키나 아이스크림, 치즈 등을 먹는다. 먹을 때마다 새로운 접시가 등장해 설거짓거리가 항상 푸짐하다. 우리네 정서로는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아 먹던 접시에 달라고 해도 그녀 남편은 매번 새로운 접시를 꺼내 음식을 담아준다. 에너지 낭비에 물 낭비..... 게다가 프랑스는 물 부족 국가라던데... 그녀는 아예 포기를 했는지 우리 부부의 새 접시 거절 모습을 보고 웃기만 했다.
그녀가 생필품을 구입하러 동네 마트나 멀리 떨어진 대형마트, 로컬 마켓도 따라다니면서 구경했다. 로컬 마켓에선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알록달록한 각종 채소나 과일, 견과류, 치즈, 잼 등을 팔았다. 우리나라에 없는 채소나 과일, 우리와는 너무나 다르게 생긴 가지나 사과 등을 구경하면서 신기했다. 빵 가게나 초콜릿 가게에 진열된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빵과 초콜릿이 군침을 돌게 했다. 그 가게들은 다가오는 부활절에 맞춰 부활 계란과 토끼, 당근 등을 만들어 예쁘게 장식해 놓고 손님들을 맞이했다. 멋진 장식을 카메라에 담으려 했더니 영업 비밀이라며 찍지 말란다. 할 수 없이 눈 호강만 했다.
로컬 마켓을 구경하고 돌아오던 길, 그녀가 친하게 지내는 이웃집을 방문했다. 몇 백 년 된 듯 약간 동굴 느낌이 나는 자연친화적인 집이었다. 집 정원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었고 군데군데 골동품들이 놓여 있어 옛 정취를 물씬 풍겼다. 실내 곳곳에는 정원에서 가져온 예쁜 꽃들이 장식되어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다양한 종류의 작은 불상들이 놓여 있었다. 프랑스 시골집에서 만나는 불상이 뭔가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는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녀 부부는 그들에게 프랑스식 인사를 했다. 그리곤 우리 부부에게도 그렇게 하란다. 쑥스러워하며 하지 않겠다는 우리에게 그녀는 글로벌 시대에 맞게 포용적인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며 기어이 볼 키스(비쥬, Bisou)를 하게 했다. 상대방과 짧게 양쪽 볼을 번갈아 대고, 한쪽 볼이 닿을 때마다 입으로 '쪽' 소리를 낸다고 했다. 서로 아는 사이에서 만날 때나 헤어질 때 하지만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한단다. 주저하는 우리에게 그 집 주인 부부도 기꺼이 볼을 내주며 비쥬를 청했다.
그녀는 마을 문화센터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악기를 배우는 주민들이 3개월마다 다 같이 참여해 연주회를 개최한단다. 다행히도 그 연주회에 초대되었다. 어린아이에서부터 70대 노인까지 자신이 배우는 악기로 독주와 합주, 이중주, 노래 반주를 했다. 긴장한 모습으로 진지하게 연주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 반 아이들의 재능발표회 장면이 떠올라 힘찬 박수를 보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취미생활을 즐기는 어른들도 보기 좋았다. 세련되거나 능숙한 솜씨는 아니지만 즐겁게 연주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여유로움과 행복감이 묻어났다.
프랑스 전원에서의 소소한 일상을 체험하면서 나도 덩달아 넉넉하고 여유로워진 느낌이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던 나로서는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그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높고 넓은 파란 하늘과 광활한 들판. 그 속에서 욕심 없이 하루하루를 즐겁게, 느긋하게 살아가는 그들. 그들의 여유가 내 삶에도 젖어들기를, 그래서 천천히, 행복하게 살아가길 간절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