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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파데이 May 22. 2023

엄마와 거리두기 (1)

나르시시스트 엄마

동생이 대기업에 취직했다.

임직원 할인혜택 같은 콩고물을 탐욕스럽게 탐내며 나는 진심으로 축하했다.

오래간만에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근황을 묻고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출퇴근과 업무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엄마는 괜히 가만히 있던 나를 똥구덩이로 처박았다.


출퇴근도 5분거리, 칼퇴근도 너무 중요해서 쟤만 가방끈 제일 긴 게 그딴 데 다니잖아.


무슨 그런 말을 하냐고 화를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랬으면 분위기 싸해지고 나는 그저 동생 잘 된 게 배 아프고 열등감 있는 쪼잔한 년 되는 거다. 

그냥 못 들은 척 넘겼지만, 내 커리어와 직장을 그딴 데라고 폄하한 게 너무나 분하고 억울해서 집에 돌아와서 좀 울었다.

그리곤 취업준비할 때 못 기다려주고 들들볶으면서 내 피말리던 사람이 누군데. 하고 해묵은 원망까지 꺼내는 거다.


일주일에 3번 이상의 팀회식과 술 강요, 9 to 6이지만 6시 반을 칼퇴로 치고 평균 8시 퇴근, 왕복 5시간의 출퇴근시간. 지나친 사생활 간섭과 어느 한 무리에 속하지 않으면 도태시켜 버리는 골 아픈 사내정치문화까지. 

그 모든 대환장을 한 곳, 첫 직장에서 3년간 겪고 정병을 얻기 직전에 결혼으로 도피했다.


5년 경력단절에 보수적인 업계특성까지 있는 곳에서

퇴근하면서 물리적 혹은 정신적으로 일을 집으로 가지고 오지 않아도 되며 납득가능한 페이를 받는 직장이 어디 쉽나? 거기다 집에서 회사까지 왕복 5km가 채 안 된다.


친구들하고 자유여행으로 해외가게 비행기, 호텔, 관광지까지 다 알아봐 달라길래

내가 그걸 왜 해주냐니까 너가 제일 시간 많잖아. 하던 엄마는 도대체 날 뭘로 아는 걸까?

일에 치여서 눈 밑이 퀭한 대기업 다니는 자식은 뭘 해도 안타깝고

대기업 아닌 그딴 데 다니는 자식은 맨날 놀고먹는 거 같으니 부려먹기 좋은가 보다.


남편은 또 뭔 죈가 싶지만 나는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며 울분을 토했다.

엄만 내가 그런 얘기들 꺼내면 아마 기억 안 난다고 할걸?

우리 엄마도 그래. 남편이 공감했다. 

그러면서 우린 그런 부모는 되지 않기로 약속했다. 아이에게 혹여 상처 줬던 순간이 있었더라면 대수롭지 않게 그냥 기억 안 난다는 말로 모면하고 피하지 않기로.


이제껏 나는 내 일과 직장에 무척 떳떳하고 당당했는데 남도 아닌 엄마가 그렇게 나를 뭉개버리니 자괴감이 들었다. 나만 너무 치열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사는 걸까. 이렇게 내 인생이 그래도 쟤보단 낫지의 쟤가 되는 거 아닐까.

그렇게 침대에 누워 열등감과 열패감에 짓눌려 허덕이는 나를 하이가 일으켜 세웠다.

한참을 공들여 그림그리고 색칠한 것을 오리려고 가위질을 하다 삐끗해서 중요한 부분이 댕강 날아갔는데 하이는 잠시 멈칫했다가 괜찮아 테이프로 붙이면 돼. 내 껀데 뭐. 하고 대수롭지 않게 다시 가위질을 했다.


그래. 내 껀데 뭐.

남 보기에 좀 너덜하고 너저분하면 어때.


그렇게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쉽게 앙금이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뭐 언젠간 옅어지겠지. 

그렇게 엄마와 거리두기를 이제 정말로 마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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