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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파데이 Apr 16. 2024

나보다 큰 아이의 사랑

일주일의 시간이 생겼다.

얼마 전 세부에 다녀오긴 했지만, 물개 같은 하이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남편의 허락을 받기 전 물밑 작업을 했다.

마음 같아선 ppt로 만들어 브리핑하고 싶었는데

너무 극성을 떨면 오히려 반감을 가질 것 같아 최대한 간결하고 직관적인 준비를 했다.


교통수단을 아이와 단둘이 이용하는 것을 가장 큰 위험요소로 두고 있기 때문에

몰과 호텔이 인접한 곳을 찾고 취소가능한 상품으로 미리 예약을 해두었다.


남편의 기분이 적당한 때를 노려 

호텔 위치 지도와 사진을 보내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십사 굽실댔고

차라리 가까운 일본을 갔다 오라고 하던 남편은 내 설득에 결국 한숨을 쉬더니 하이를 불렀다.


하이야, 엄마가 갑자기 일주일 시간이 생겨서 여행을 갈 건데. 엄마랑 단 둘이. 아빠는 못 가고. 

엄마랑 단 둘이 세부를 갈 거야.


하루 6시간씩 드넓은 수영장에서 일주일 동안 여름을 만끽하고 

귀국 때 무척 아쉬워했기 때문에 

나는 진짜 정말, 하이가 좋아서 방방 뛸 줄 알았다.


하지만 하이의 대답은 나와 남편을 무척 놀라게 했다.


아빠 안 가? 그럼 안 갈래. 가족 모두 함께 하지 않는 여행은 의미 없어.


정말 입이 떡 벌어졌다.

남편도 나도 0.000001%도 생각지도 못한 하이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하이가 좋아서 당장 따라나설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가족 모두가 함께해야 의미 있는 여행이라니.

어쩌면 아이의 사랑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고 넓은 게 아닐까

내가 품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얼마나 큰 자만이었는지.


아이에게 배운다.


체험학습 보고서를 쓸 때마다 늘 등장하는 

가족여행을 통한 가족 간의 유대감 쌓기, 소중한 추억 만들기. 등의 문장은 계획서의 구색 맞추기 즘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크지 않는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게 되었다.


남편을 어떻게든 설득할 생각으로 

미리 예약해 뒀었던 세부 호텔을 취소하며 남편에게 고백을 했다.


나 사실 일본 호텔도 예약해 뒀었어.


아이는 저렇게나 의젓하고 대견한데.

남편은 나를 좀 전과는 확연히 다른 의미로 기막히다는 듯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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