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미술대학에 입학한 남편은 한 학기를 마친 후 곧바로 군대에 입대를 했다고 한다.
첫 휴가를 나와서 성당 신부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던 그는 그 자리에서 신부님께 붙들려 성당 입구 벽면에 부조를 만들어 붙이라는 명령(?)을 받았단다.
그 부조는, 성당 입구에서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예수님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비둘기, 지구본, 성경책, 성작 등을 형성화 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단지 미대에 입학만 했을 뿐 조각을 해 본적도 어떤 재료도 접해 본 적이 없는 애숭이가 그저 신부님의 지시에 따라 겁도 없이 어설프게 부조 제작에 돌입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어설픈 부조 작품이 50년 동안 비바람에도 아랑곳없이 꿋꿋이 벽에 붙어 성당을 방문하는 신자들을 맨 먼저 맞이하며 성당의 상장물로 자리를 지키고 있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
50년을 건너뛴 작년 겨울. 남편에게 신부님으로부터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주어졌다.
성당 건물 벽면 아래쪽을 쭉 돌아가며 십자가의 길 14처를 도자로 제작하라는 게 그것이었다.
예수님이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숨을 거두고 무덤에 묻히기까지 그 고통의 길을 엮은 십자가의 길 14처.
그 숭고한 여정을 작품화해 달라는 의뢰를 받은 남편은 고뇌가 깊었다. 그저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고 평면 작업도 아닌 도자기로 부조를 제작해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너무 어렵고 까다로운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두텁게 흙을 밀어 판을 만들고 그 판에 밑그림을 그리고 흙을 깎아가며 입체감을 내는 작업은 너무 섬세하고도 예민해 예상보다 더 긴 시간을 요구했다. 더구나 기간은 사순절 전까지로 못 박혀 있는데 겨울이라 흙이 마르는 시간마저 더디기만 했으니...
작업 시간은 아침 7시부터 저녁 7~8시까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밥 먹는 시간마저 아껴가며 그렇게 작업에 몰두했다. 꼬박 석 달 동안을.
결국 남편은 허리 근육이 늘어나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지경이 이르렀고 침 맞으러 가는 시간조차 아까워 진통제로 버티며 작업을 이어갔다.
내가 26번의 개인전을 했지만 이만큼 정성을 쏟아 본 적이 없었어. 성당 일이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진 못했을 거야.
남편 말대로 정성을 다 쏟긴 했지만 그래도 불안은 여전히 존재했다. 도자기란 가마 속에 들어가면 어떤 요변이 생길지 예상 못하는 부분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니 말이다.
게다가 파손율이 가장 높다는 판상작업이 아닌가.
14개의 도판 중 하나라도 금이 가면 그것만 다시 처음부터 만들고 깎고 굽는 전 과정을 다시 되풀이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럼 도저히 일정을 맞추지 못하게 된다. 그 생각만으로도 피가 마르는 것만 같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그랬을 진대 제작하는 본인은 오죽했을까.
다행히 전기 판넬까지 동원하며 말린 작품은 초벌구이에서 한 점의 파손도 없이 깔끔하게 구워져 나왔다. 가슴을 쓸어내렸고 일단 한 고비 넘겼구나 싶었다.
그리고 유약으로 그림 채색하듯 칠을 했다. 신부님의 요청에 따라 컬러풀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한두 가지가 아닌 수많은 안료와 유약을 사용하여 채색하는 과정도 결코 녹록치가 않았다.
드디어 재벌구이다.
남편은 한평생 도자기 인생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불을 이끌었다. 단 한 점의 파손도 있어서는 안 되는 절체절명의 시간이었다.
불을 때고 식히고 꺼내는 그동안은 남편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기조차 두려웠다. 얼굴색이 안 좋으면 어떡하나. 혹시나 잘못됐다는 소리가 나오면 어쩌나. 과연 백 프로 완벽한 결과란 있을 수 있을까.
아무 도움을 줄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기도뿐.
당신의 일을 하는 것이니 부디 예정대로 실패 없이 이루어지길 빌고 또 빌었다.
가마 문을 열고 작품을 꺼내는 날. 차마 작업실에 가 볼 수가 없었다.
남편의 기색을 살폈다. 평화롭다.
마침내 하나도 파손 없이 완성되었다는 말을 들은 나는 나도 모르게 기적이란 말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이 흘러넘쳤다.
남편은, 내가 얼마나 정성 들여 불을 땠는데. 라며 공을 자기에게 돌렸지만 나는 결코 그분의 손길 없이는 이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믿었다.
성당에서는 성당대로 나무를 옮기고 땅을 새로 포장하고 대청소를 하고 14처 부착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작품을 옮기기 바로 직전까지 작품을 손질하고 또 손질했다.
일요일 미사 후 '골고다 아리랑 십자가의 길 14처 축성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신부님들이 축하차 오셨고 군수를 비롯한 각 단체장들과 교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남편은 경력이 소개되고 꽃다발과 감사패를 받았다.
눈물이 났다.
그동안의 노고를 너무 잘 알기에. 너무 가슴을 졸였기에. 50년 전 애숭이가 마침내 과업을 완성한 듯했기에. 당신이 베풀어 주신 기적 같은 오늘이 너무 감사했기에.
나는 언제부턴가 기도할 때마다 당신이 주신 남편의 재능과 달란트를 당신을 위해 쓰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제 나의 기도가 이루어진 것일까.
사순절 동안 많은 사람이 이 14처를 돌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칠 것이다.
남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성당 외벽의 성조각품들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나지막이 읊조린다.
주님, 감사합니다. 영광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