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패션계의 피카소, 폴 푸아레

PAUL POIRET

by 총총

"직접 만든 드레스에 서명할 때 만큼은, 난 예술 작품의 창조자다"

폴 푸아레




푸아레는 패션사에서 예술적 재능을 지닌 탁월한 디자이너라 평가된다. 20세기의 첫 20년간 새롭게 전개된 그의 패션들은 현대로 나아가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는 전위적인 쿠튀리에 였을 뿐만 아니라 비전을 가진 용상가였으며, 위험을 감수하며 외국으로 영역을 확장하여 위대한 성공을 이루기도 했으나 결국에는 모든 것을 다 잃고 말았다.


푸아레는 처음에 견습 사원에서 시작하여 틈틈이 스케치나 드로잉을 했다. 그의 스타일화를 구입했던 마담 셰뤼는 그를 자크 두세에게 소개했고, 푸아레는 두세의 스튜디오에서 일하면서 오트 쿠튀르의 기본을 익혔다. 그곳에서 푸아레는 인체에 직접 디자인하는 드레이핑 기술을 배웠으며, 그 방법을 평생 간직하였다. 1899년, 유명 여배우 레장의 코트를 디자인하면서 푸아레의 디자인은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푸아레는 특허권 분쟁으로 두세와 결별하고 찰스위스의 하우스로 옮겨 1903년 본인의 살롱을 오픈하기까지 2년 동안 그곳에서 일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의 '새로운 정신esprit nouveau'을 발전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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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패션 부티크는 호화롭고 고급스런 분위기에다 이국적이고 표현적인 옷을 입은 과장된 모델들과 다채로운 디자인으로 가득하여 아방가르드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푸아레는 종종 아내 드니즈 불레에게 자신의 의상을 입혔다. 1906년 그녀는 푸아레의 첫 작품 중 하나인 코르셋이 필요 없는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였으며 1910년에 촬영한 사진에서는 고대 그리스풍의 얇은 슈미즈를 입은 모습이다. 동양에서 영감받은 의상을 입은 그녀는 푸아레가 주최한 '천일야화' 파티에서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푸아레의 전등갓 형태의 튜닉과 터키풍의 하렘 팬츠 역시 언론의 주목을 끌었으며, 1910/11년 시즌 최고의 사건으로 회자되었다.

조르주 르파프, 폴 푸아레의 [로브 소르베 robe sorbet] 드로잉 <새로운 목걸이 les Collier Nouveau>, 1913년 1월

푸아레는 자신을 예술가로 여겼으며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은 한 몸체의 부분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회적 이벤트들을 통해 자신의 디자인이 어떻게 주목을 끌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모델들을 대중적으로 알리고 순회 패션쇼와. 패션 퍼레이드를 영상으로 제작해 상영하는가 하면 폴 이리브, 조르주 르파프와 함께 책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이 모든 활동들은 자신의 최신 유행 모드를 소개하고 패션을 자유로운 예술적 방법으로 해석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에르테에게 드로잉을 의뢰했으며, 1911년에는 화가 라울 뒤피와 공동으로 직물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들은 확실히 혁신적이었으며 창업을 하는 데도 혁신적이었다. 그는 향수 회사 로진 Rosine(1911)과 공예학교이자 공방인 에콜 마르틴Ecole Martine(1911)을 설립했으며, 패키지 디자인 공방 콜랭 Collin(1912)을 열었다. 그는 세련된 여성 고객들의 요구에 대한 본능적 감각으로 크게 성공하여 파리 심장부에서 패션 복합매장 주인이 되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중에 푸아레의 패션 하우스는 문을 닫았고, 그 이후 다시 문을 열었을 때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1925년에 재정 파탄에 빠져 사업체는 매각되었고 그가 소장하고 있던 회화 컬렉션들은 경매에 붙여졌다. 1929년 그의 살롱은 파산선언을 했다.




폴 푸아레의 대략적인 연대기를 알아보자.


1879 - 4월 20일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

1896 - 구두 상점의 영업사원으로 근무

1898~1903 - 자크 두세와 찰스 프레더릭 워스의 작업실에서 실습

1903 - 파리 오베르 가 5번지에 오트 쿠튀르 살롱 오픈

1905 - 코르셋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누벨 바그 라인 발표

1908 - 폴 이리브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폴 푸아레 드레스 Les Robrs de Paul Poiret' 출간

1909~1924 - 파리에 후속 매장들 오픈. 발레 뤼스의 동양풍 의상에서 영감을 받은 옷을 디자인:
튜닉•'터키풍' 하렘 팬츠•터번•기모노 소매•납작한 신발 디자인

1910 - 호블 스커트 디자인

1910-1911 - 라울 뒤피에 의한 텍스타일 디자인

1911 - 긴 바지•오버올•여성용 퀼로트 디자인; 파티 '천일야화' 주최. 응용미술학교 에콜 마르틴을 설 립하고 그와 에르테, 폴 이리브가 강의함: 사진작가 에드워드 슈타이켄의 촬영으로 조르주 르파 프가 '폴 푸아레 컬렉션 Les Choses de Paul Poiret' 출간

1911- 해외 순회 : 런던(1911), 베를린•빈•브뤼셀모스크바•상트 페테르부르크(1912), 뉴욕(1913)

1914 - 프랑스 의상협동조합 설립에 적극 관여

1921-1925 - 칸•도빌•비아리츠•라불에 매장 오픈

1925 - 파리 장식미술박람회에서 마지막 성공을 거둠: 세 척의 배를 동원한 전시와 패션쇼

1929 - 파산 선언

1944 - 4월 28일 파리에서 사망




이제 폴 푸아레의 스타일들을 엿 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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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코르셋과 과장된 실루엣에서 탈피하고자 한 그는 보다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세련된 여성을 이미지화하여 전통적인 제작에서 드레이프로 중점을 옮겼다. 과거와 현재를 참고해 고전적인 실루엣을 수정하기도 했다. 그리스의 키톤과 일본의 기모노,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카프탄에서 그는 직선이나 직사각형으로 짜진 직물의 활용을 착안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푸아레는 조각상 같은 실루엣에서 추상적이고 유동적이며 원통적인 것으로 서양 패션의 패러다임을 영원히 바꾸게 된다.


푸아레는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Diaghilev의 발레 루세Russes로부터 강한 영감을 받았고, 거기서 오리엔탈리즘의 낭만적이고 연극적인 옷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의 예술적 동지이자 발레 루세의 의상 디자이너였던 Léon Bakst와 마찬가지로, 푸아레의 이국적인 취향은 '램프셰이드' 튜닉과 '할렘' 바지와 판탈론과 같은 비비드한 색상의 코디와 수수께끼 같은 실루엣을 사용함으로써 포착되었다. 면이나 울 소재로 주름이나 무지 드레스도 만들곤 했지만 그가 가장 좋아했던 소재는 실크와 자수였다. 1908년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시절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엠파이어 스타일의 드레스도 부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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