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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량밍 Apr 18. 2023

이상하잖아, 뭐가 마음에 안 드는데?

나 사랑하기, 1


  처음부터 그런 면을 내게 보이지는 않았다. 친구가 자격증처럼 증명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때의 우리는 친구 관계가 맺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다닌 지 반년 정도가 지날 때까지 나는 그 아이에게서 밴드나 상처를 본 일이 손에 꼽았다. 체육 수업에 참여하다 다치거나 동생과 장난을 치다 생겼을 자국 정도가 전부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리고 순수했다. 누가 바보같이 직접 본 적도 없는 걸 그렇게 순순히 믿어줄까. 세상은 크던 작던 증거로 무죄와 유죄의 판결이 내려진다. 사회는 그런 곳인데 이제 겨우 15살이었던 아이의 입장에서는 그런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순히 '내 친구가 힘들어한다'라는 사실만으로 실제 존재하는지 아닌지 모를 가해자들을 미워했다.


  그날 이후, 그 아이는 꽤 자주 자신의 상처와 과거를 이야기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알려줄 사람은 없었다. 그 아이가 말하던 친구는 같은 중학교에 다니던 한 두 명 정도였으니까.

  그 아이는 정말 갑자기 '소꿉친구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유치원부터 같이 나왔다던가. 그때의 나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는 말았다. 다른 친구들을 포함한 단체 카톡방에서 그 아이의 휴대폰으로 자신은 그의 친구라며 말을 걸어오고서야 그들의 존재를 친구의 지인 정도로 기억했던 것 같다.

  처음엔 한 명이었지만 나중에 등장한 사람들까지 다 합치면 그 아이의 소꿉친구는 총 8명이었다.





  그 사람들의 이름은 적당히 일호와 이호, 삼호... 그렇게 팔호까지로 할까. 몇 명의 이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모두를 기억하지는 못한다. 굳이 그 이름을 밝힐 생각도 없고.


  가장 처음 등장했던 일호는 장난스럽고 말이 많았다. 가장 자주 카톡에 등장했고 거의 항상 사호에게 카톡을 넘기곤 했다. 그들은 자주 그 아이에게 관심을 줄 것을 종용했다. 사실 종용은 사호와 칠호만 했고 일호는... 강요였다.


  우리-단톡방에 있던 친구들과 일호들-는 제법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자주 카톡을 했고 그 아이를 통해 일호들의 일상을 들었으며, 우리의 일상과 취미를 공유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흔히 친구였노라 말하지는 못할 관계였다고 생각한다. 친구라는 게 어떠한 증명이 필요한 관계는 아니지만 그 아이의 집에 자주 놀러 갔었고, 심지어 호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고 들었지만 단 한 번도 그들을 보지 못했다. 한 번쯤은 마주칠 법한데도, 그들의 목소리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조금씩 그 아이가 이야기하는 빈도가 늘어갔다. 나는 그 이야기에 늘 비슷한 반응을 내놓았다. 어르고 달래며 어린 동생을 대하듯이 그 아이를 대했던 것 같은데, 그게 어느 순간부터 당연한 것이 되었나 보다. 그 아이는 거의 매일 내게 이야기를 꺼냈고, 일호들은 내게 더 신경 써달라고 요구해 왔는데, 나는 그게 힘들다는 생각도 못 했다. 그냥 내가 해야 하는 일 중 하나, 정도로 생각하고 걱정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아이한테만 붙어있었던 건 또 아니었다. 나도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이가 있었고, 중학교에 사귄 친구가 그들뿐이지는 않았으니까. 그 아이보다도 먼저 사귀었던 친구들과 점심시간마다 모여 피구나 배드민턴을 치며 놀았으니까, 적어도 점심시간만은 그 아이보다 다른 친구들을 우선시하였다. 그래서 그 아이의 밴드가 거대한 가림막이 아니라 안대로 남았던 것 같다. 쉽게 벗겨지고 틈새가 존재하는 안대.


  내 인간관계가 조금 더 좁았다면 나는 그 아이의 모든 행동을 마땅한 것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나는 불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는 생각보다 인간관계라는 것에 많이 매달리는 편이다. 그럼에도 그 아이와의 관계에는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 내가방에 컷터칼있는줄 오늘 첨알았다 ]


  나는 피가 너무 싫다. 그걸 알면서도 무기로 휘두르는 사람은 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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