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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H Nov 23. 2021

창덕궁의 숨겨진 20세기 (2)

창덕궁경찰서와 그 청사 이야기

1913년 경에 발행된 것으로 보이는 창덕궁 돈화문의 전경을 담은 엽서. 돈화문 너머로 창덕궁경찰서 건물이 보인다.

얼마전 페이스북에 공유했던 1910년대 초의 창덕궁 돈화문 사진엽서에 돈화문 문 너머로 창덕궁경찰서 昌德宮警察署 건물이 찍혀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더니, 이를 본 한 페친이 창덕궁에도 경찰서가 있었느냐는 물음을 페북 메신저로 물어봐주셨다. 답은 물론 Yes이지만, 이참에 본격적으로 한번 이 건물의 역사를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덕궁경찰서의 역사는 대한제국 시절이던 1908년 창덕궁에 설치되었던 황궁경찰서 皇宮警察署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 시기에 고종은 1901년 경위원 警衛院을 설치하고 주로 경운궁(덕수궁)의 방비와 안전을 책임지는 친위 경찰조직을 운용하였으나 러일전쟁과 을사조약을 겪으며 그 내용이 위축되었고, 이후 황실경위국으로만 축소되어 남아있던 조직 역시 1907년에 이르러 혁파되었다. 이후 순종이 창덕궁으로 이어한 1907년 말 - 1908년 초에 이르러 창덕궁에 다시 황궁경찰서가 설치되었는데, 당시 황궁경찰서는 창덕궁 승화루 承華樓 1층에 자리를 잡았다. 


1908년 창덕궁 승화루 1층에 설치된 황궁경찰서의 모습


그러나 병합조약이 체결된 직후인 1910년 9월 1일자로 황궁경찰서는 해체되었고, 대신 창덕궁과 덕수궁의 치안유지와 경비를 담당하는 창덕궁경찰서가 별도로 설치되었는데, 이는 총독부 경무총감의 직속기관이었다. 한동안 이 경찰서는 승화루에 계속 입주해 있었던 듯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 건물을 지어 옮겼는데, 그 자리는 창덕궁 금천교를 건너기 직전 왼쪽에 있는 공터로 1909년까지는 본래 누국 漏局, 즉 자격루 물시계가 설치되어 있던 지점이었다. 이때 지어진 청사가 언제 정확히 완공되었는지는 알수 없지만, 국가기록원 소장 일제시대 건축도면 가운데 이와 관련된 도면 2점이 1912년 9월에 그려진 것을 보면 대략 1913년에는 완공되지 않았을까 추정할 수 있다. 한편 창덕궁경찰서는 바로 옆의 어원 御苑, 즉 창경원과 덕수궁의 치안유지까지 맡았기 때문에 이를 위한 별도의 파출소를 따로 두었는데, 창경원에는 숭문당 崇文堂에, 덕수궁에는 덕홍전 앞 행각에 설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1930년대 초 창덕궁경찰서 청사의 모습


창덕궁경찰서는 그 이후 일제강점기 내내 창덕궁의 이왕가 일족들의 안녕과 안전을 보호하는 기관으로 기능했지만, 고종과 순종이 모두 승하한 뒤로는 일제 말기가 될 수록 계속해서 그 기능이 위축되어갔다. 해방 직후에 그려진 창덕궁평면도에서는 1910년대에 지어진 창덕궁경찰서의 본관을 오히려 "구관 舊館"이라고 부르고, 돈화문 왼편 담장을 따라 서 있던 그 옛날의 영군직소 營軍直所 건물을 개조해서 경찰서로 사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해방 후 창덕궁경찰서는 다시 본래의 청사로 돌아가 업무를 시작했는데, 이 시기의 주요 업무는 대개 창덕궁 건물들 곳곳에 남아있는 옛 이왕가의 동산재산 및 귀중품의 보관, 그리고 창경원 내의 공공질서 유지였으며, 가끔씩은 종묘 및 "초상봉모당" (선원전)의 관리 업무까지 맡았던 듯 하다. 또, 신문기사를 보면 1948년부터 50년까지는 가끔씩 경무대경찰서와 업무를 분장하여 이승만을 비롯한 정부 및 내각 수반의 경호업무까지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6.25 전쟁 이후로도 창덕궁경찰서는 계속 유지되었다. 인터넷에 나타난 1950년대 초의 사진을 보면,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창덕궁경찰서가 동대문경찰서의 지서로 편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도 주력 업무는 창덕궁의 귀중품 보호였는데, 적어도 1960년까지는 이 업무를 계속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1960년 6월 7일 바로 옆에 있던 구황실재산사무총국 청사가 의심스러운 정황 속에서 화재로 파괴되면서 이 기능은 상당히 쇠퇴하였다. 그 후 1963년 영친왕과 윤비 등이 창덕궁으로 돌아왔을때 잠시 그 기능이 확대되는 듯 했으나, 1966년 윤비의 승하 이후 다시 그 기능이 축소되었고, 1972년에는 청사 역시 창경원 안의 가건물로 옮겨가면서 경찰서에서 파출소로 격하되어 1984년 창경원의 해체와 함께 폐지될 때까지 운영되었다. 


1950년대 중반에 촬영된 창덕궁경찰서의 모습. "서울 동대문경찰서 창덕궁지서"라는 간판이 선명하다.


창덕궁경찰서 본관은 그 후로도 얼마간 계속 서 있었지만, 1993년부터 시작된 복원작업 와중에 별다른 기록화 작업 없이 조용히 철거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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