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차, 첫 걸음
4년 전 뚝방이와 찾아갔던 제주… 그때 대중교통만 이용하겠다며 갔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제주의 버스시간 때문에.. 결국렌 렌터카를 이용하고… 후에 호갱이 되어 수리비 5만 원을 지불하고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이번엔 5박 6일 동안 걷기 여행을 해보자는 각오로 출발하였다. 각자 배낭엔 6일 동안 입을 옷과 각종 전자제품 관련, 카메라, 생필품 등 여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들을 채웠다. 대충 5-7kg쯤 되었을 것이다. 6일 동안 메고 다닐 생각만 해도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어깨가 아파왔지만…. 후에 900km 30-40일의 순례길 대장정을 위한 트레이닝이라고 생각하고…우리 커플은 충실하게 5박 6일을 다녀올 각오를 했다.
회사의 눈치를 보며 겨우 여름휴가를 승낙받은 뚝방이와 프로젝트 회의 중 “이번 휴가는 다들 미루도록 해라”라고 통보한 이사님의 말을 뒤로 하고 떠나는 나… 아침 비행기라 5시부터 일어나 뚝방이를 픽업하고 김포공항으로 향한다. 9시 20분 비행기를 기다리며 대충 끼니를 때우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였다.
윙크를 날리는 제주항공의 항공기의 왼쪽 날개 죽지…
왠지 공항에 여권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게 찝찝하긴 했지만..(제주도는 국내기 때문에 신분증만 있으면 OK) 중간에 우여곡절도 있었지만(공항 검사대에서 뚝방이의 커터칼을 빼겼다.) 어쨌든 제시간에 항공기에 탑승하여 부푼 마음을 품은 채 제주도로 날아갔다.
제주공항에 도착한 뒤, 20코스 시작 지점인 어민복지회관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21코스는 첫째날과 둘째 날에 나눠 걷기로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20코스에서 시작해서 21코스 1코스 -3코스까지 제주 동쪽을 걷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표이다. 20코스 21코스 1코스는 전부 걷고, 마지막 날 3코스에 버스를 타고 김영갑 갤러리에 들른 뒤 휴식을 취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스케줄!
보통 여행을 혼자 가게 되면 무계획으로 돌아다니는데, 걷기 여행은 그래도 방향과 대략적인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을 느꼈다. 목적이 없으면 정말 지루하고 힘들기 때문이다. 일단 하루의 최종 목적지가 있어야 되고, 시간별로 어떻게 휴식 시간과 점심시간을 분배해야 할지.. 그리고 비상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미리 마음속에 담아두고 움직였다.
갑자기 멀리서 총총총 뛰어오는 백구 한 마리... 무언가 먹을걸 얻어먹으려 오는 것 같지만,
우린 아무것도 없단다...
이번 여행은 closed의 연속이었다. 가보고 싶은 맛집이 요일별로 몇 군데 있었는데, 월요일은 월요일이라 쉬고 화요일은 화요일이라 쉬고 수요일은 수요일이라 쉬었다. 결국에 계획한 곳은 한 군데도 가지 못했지만 계획 없이 간 모든 음식점, 카페들이 만족스러웠다. 어쩌면 문을 닫은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괜찮은 집들도 있었다.
날씨는 덥긴 했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땀이 조금 나게 걷고 나서 샤워하고 시원하게 게스트하우스에서 쉬며 막걸리, 맥주 한잔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은 정말 기분 좋았다.
김녕, 생각만큼 깨끗했던 바다와 멀리서 돌아가는 풍력 발전기를 멍하니 보고 있으면, 도시에서 바쁘게 살았던 순간들이 금세 잊힌다.
제주도에 처음 와서 먹은 회국수, 생각보다 정말 괜찮았다. 의외로 회도 많이 들어가 있고 고추장 소스 간도 적절했다. 아쉬운 점은 우리가 약간 쌀쌀한 날씨에 먹어서 따뜻한 국물이 조금 생각났었다는 점이다.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본격적으로 걷기 전에 김녕 해수욕장에서 사진을 찍었다.
메르스의 여파인지, 아직 성수기가 아니라 그런지… 올레길을 걷는 내내 사람이 별로 없었다.
여자친구와 단둘이 여행을 할 때 조금은 번거로운 점은 커플사진을 찍을 때이다. 걷는 내내 무거은 삼각대를 짊어지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 매번 누구한테 부탁하기도 힘들고,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찾은 대안점은
작은 고릴라포드(작은 삼각대의 일종이다. 어디든지 구부러지고 고무 재질로 어디든 올려놓을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를 가지고 다니다가 적당히 걸쳐놓고 찍자는 계획 이었고,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20길을 반 정도 걷는 내내 바다가 보였고, 풍력 발전기도 정말 많았다.
올레길을 걸으며 표식을 따라가다 보면, 빠른 길을 내버려두고 괜히 옆으로 한번 더 돌거나 숲 속으로 들어갈 때가 있다. 물론 정말 좋은 풍경을 선사해줄 때도 있지만 편한 길을 우회해서 풀숲으로 들어가는 코스는 약간 지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제주도는 줄곧 바다라고 생각했지만.. 바다만큼 골목길도 많았고 숲도 많았다.. 계속 바뀌는 풍경덕에 하루 종일 걷는데도 심심하진 않았다.
어딜 여행가던지, 첫날이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다. 유럽에 혼자 배낭을 메고 갔을 때에도 처음으로 도착한 런던의 차분하고 조용한 풍경이 기억에 가장 많이 남았고, 여자친구와 방콕에 갔을 때에도 공항에서 나와 숙소로 가는 도중에 어수선한 길거리에서 마셨던 맥주의 시원함이 잊히지 않는다. 이번에 갔던 제주도는 첫날의 시원했던 바람과 김녕 바다의 맑고 푸른 모습 그리고 해녀들이 일하던 모습들이 기억에 남는다.
야무지게 걷는다.
제주는 어느 곳이나 운치 있어서 멋진 사진들을 많이 남길 수 있었다. 나와 뚝방이는 사진 찍는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다. 찍어놓으면 나중에 공모전에도 출품해보고, 후에 있을 전시에도 좋은 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나 나중에 책을 내 거나 잡지를 낼 때 정말 중요한 자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제주도엔 현무암이 많아서 이런 검은색 바닥과 돌 무더기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내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라서 어쩌면 더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이번 여행을 대비해서 테바라는 브랜드의 샌들을 구입했는데.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밑창이 두껍고 탄력적이라 발의 피로도가 줄어 오랜 시간 걸어도 무리가 가지 않았다. 샌들에 달린 끈도 앞과 뒤 발등 부분 모두 조절이 되어 발과 밀착하여 신을 수 있어 편하다. 다만 땀과 비에 젖어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로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1시간에 한번씩 휴식을 취했다. 중간에 물 보충도 하고 서로 어깨를 주물러 주며 5분에서 15분 정도 쉬면서 목적지 까지 걸었다.
드디어 도착한 첫 번째 목적지인 월정리.
어렵사리 도착한 게스트하우스(뒹글하우스)에서 풍경을 그리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뚝방이
사실 월정리가 요새 핫플레이스 라길래 기대를 하고 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약간은 실망했다. 벌써 여기저기 카페가 들어오고 편의점과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있었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여기저기 차가 지나다니는 탓에 조용함을 즐기러 온 나와 뚝방이는 실망했다. 강릉의 안목해변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그래도 원래 가기로 했던 고래가 된 카페에 가서 맥주를 한잔 하기로 했다.
뚝방이와 난 제주도에 오기 전 그림을 두 달 정도 배웠다 그래서 실력 발휘 좀 해보려 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금방 포기하고 말았다.
제주에선 개들이 가고 싶은 곳을 맘껏 돌아다니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심심하면 동네 가운데 있는 큰 나무 그늘 밑에선 친구들과 만난다. 제주도의 개들은 정말 자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또 어찌나 순하던지 바로 옆까지 가도 신경도 안 쓴다.
월정리 탐방을 마치고 뒹글하우스로 들어와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막걸리 한잔을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배낭여행을 다녔을 때도 그렇고 정말 신기하다. 여행지에선 평소에 도심 속에서 마주 쳤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와 힘이 있다. 금방 친해지고, 항상 헤어질 때는 아쉽다. 밤늦게 같이 술 한잔 하며 여러 가지 겪었던 얘기들을 하며 그날 밤은 지나간다. 그리고는 다음날 홀연히 떠난다. 어떤 사람은 다음에 만날 약속을 하기도 하고 여행이 끝난 뒤에 만나서 술 한잔 하자고도 하지만 여행이 끝난 뒤 다시 살기 바빠질 것이다. 약속은 잊히고 여행의 기억도 그냥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첫날은 일찍 밥을 먹고, 사람들과 막걸리 한잔 하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금세 잠이 들었다.